법구경 강의(221115) ㅡ 11. 늙음 품, 게송(153-154)[부처님의 오도송 with 범천의 요청 경](근본경전연구회…
▣ 법구경 강의(221115) ㅡ 11. 늙음 품, 게송(153-154)[부처님의 오도송 with 범천의 요청 경](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9KQ8T8FVfc
(게송 153-154)
옮겨가고 윤회하는 오랜 태어남의 과정에서 찾지 못한
집을 짓는 자를 찾는 자가 있다. 거듭되는 태어남은 괴로움이다.
집을 짓는 자여, 그대는 발견되었다. 그대는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한다.
그대에게 서까래는 모두 부서졌고 대들보는 유위(有爲)에서 벗어났다.
심(心)은 행(行-형성작용)에서 벗어났고, 애(愛)들의 부서짐을 얻었다.
; 부처님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알려진 이 두 게송은 집을 짓는 자에 비유한 애(愛) 때문에 거듭 태어나 윤회(輪廻)하는 중생의 삶에서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게 하는 즉 벗어나기 위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집 = 오취온(五取蘊)인 ‘나’
고집(苦集)인 애(愛)는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 위에서 설명되는데, 심(心)의 아래위에 자리하는 탐(貪)과 소망으로 구성됩니다. 또한, 탐(貪)의 아래에 자리하는 무명(無明)은 애(愛)와 함께 중생의 삶을 대표하는데,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으로 묘사되는 두 가지입니다.
게송은 고집(苦集)인 애(愛)를 집을 짓는 자로, 무명(無明)을 집의 대들보, 탐과 소망을 서까래로 비유하였는데, ‘심행(心行)은 상(想)-수(受)’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심(心)이 집 즉 오취온(五取蘊)인 나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때, 대들보인 무명(無明)이 유위(有爲)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으로 번뇌의 부서짐 즉 누진(漏盡)에 의해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나는 것으로의 해탈된 심(心)을 설명하는데, 이것이 탐(貪)과 소망의 부서짐이고 애(愛)의 부서짐입니다. 여기서 애(愛)는 복수로 나타나는데, 욕애(慾愛)-유애(有愛)-무유애(無有愛)의 정의에 따른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 PTS본에서는 ‘대들보는 유위(有爲)에서 벗어났다(gahakūṭaṃ visaṅkhataṃ)’의 visaṅkhataṃ이 visaṅkhitaṃ ― destroyed, annihilated으로 나타나서 ‘대들보는 부서졌다.’라고 번역됩니다.
그런데 이 게송들이 부처님의 오도송이라는 경의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법구경 주석서의 주석에 따라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에, (SN 6.1-범천의 요청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1_06&wr_id=1)에서 바야흐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은 ‘내가 성취한 법은 atakkāvacara[딱까의 영역을 넘어섬] 즉 takka의 영역에서 애(愛)를 생겨나게 하지 않는 삶’이라고 소회를 말하는데, 이 소회야말로 부처님의 오도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이 두 개의 게송이 말하는 ‘애(愛)들의 부서짐을 얻음’이 곧 atakkāvacara[딱까의 영역을 넘어섬]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두 게송이 부처님의 오도송이라는 주석은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부처님의 오도송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게송도 있는데, 율장 대품의 깨달음의 노래[Vinaya Piṭaka, mahāvaggapāḷi, 1. mahākhandhako, 1. bodhikathā]입니다. 하지만, 율장 대품은 근본경전연구회의 공부 기준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판단하지 않고, 다만, 여기에 소개만 하였습니다.
● Vinaya Piṭaka, mahāvaggapāḷi, 1. mahākhandhako, 1. bodhikathā[율장 대품 깨달음의 노래]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 yato pajānāti sahetudhamman”ti.
열심히 선(禪)을 닦는 수행자에게 법(法)이 분명히 드러나면,
인(因)을 갖는 법(法)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모든 의심이 사라진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 yato khayaṃ paccayānaṃ avedī”ti.
열심히 선(禪)을 닦는 수행자에게 법(法)이 분명히 드러나면,
연(緣)의 부서짐을 알기 때문에 모든 의심이 사라진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vidhūpayaṃ tiṭṭhati mārasenaṃ. sūriyova obhāsayamantalikkhan”ti.
열심히 선(禪)을 닦는 수행자에게 법(法)이 분명히 드러나면,
태양이 허공에서 작렬하듯이 악마의 군대를 마침내 부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