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ārājikapāḷi, 2. saṅghādisesakaṇḍaṃ, 10. saṅghabhedasikkhāpadaṃ(상가의 분열…
pārājikapāḷi, 2. saṅghādisesakaṇḍaṃ, 10. saṅghabhedasikkhāpadaṃ(상가의 분열에 대한 학습계율)
그때 불(佛) 세존(世尊)은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기르는 곳에 머물렀다. 그때 데와닷따가 꼬깔리까, 까따모다까띳사까, 칸다데위야뿟따, 사뭇다닷따에게 갔다. 가서는 꼬깔리까, 까따모다까띳사까, 칸다데위야뿟따, 사뭇다닷따에게 “오시오, 도반들이여, 우리가 사문 고따마의 상가를 분열시키고, 법륜을 분열시킵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꼬깔리까가 데와닷따에게 “도반이여, 사문 고따마는 큰 위엄과 크나큰 힘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사문 고따마의 상가를 분열시키고, 법륜을 분열시킵니까?”라고 말했다. “오시오, 도반이여, 우리가 사문 고따마에게 가서 다섯 가지 사안을 요청합시다. ―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원함이 적고, 만족하고, 더 높은 삶을 살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찬탄하여 말합니다. 대덕이시여, 이 다섯 가지 사안은 다양한 방법으로 원함이 적고, 만족하고, 더 높은 삶을 살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이끕니다. 철저하게, 대덕이시여, 비구들은 죽을 때까지 숲에 머물러야 합니다. 마을 주변에 들어오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탁발 음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공양청을 받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분소의 만을 입어야 합니다. 장자가 보시하는 가사를 입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나무 밑에 살아야 합니다.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합니다. 생선과 고기를 먹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라고. 사문 고따마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다섯 가지 사안을 사람들에게 알립시다. 도반들이여, 이 다섯 가지 사안이 사문 고따마의 상가를 분열시키고, 법륜을 분열시킬 수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사람들은 거친 삶을 기뻐할 것입니다.”
데와닷따는 사람들과 함께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데와닷따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원함이 적고, 만족하고, 더 높은 삶을 살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찬탄하여 말합니다. 대덕이시여, 이 다섯 가지 사안은 다양한 방법으로 원함이 적고, 만족하고, 더 높은 삶을 살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이끕니다. 철저하게, 대덕이시여, 비구들은 죽을 때까지 숲에 머물러야 합니다. 마을 주변에 들어오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탁발 음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공양청을 받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분소의 만을 입어야 합니다. 장자가 보시하는 가사를 입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나무 밑에 살아야 합니다.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합니다. 생선과 고기를 먹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라고. “되었다, 데와닷따여, 숲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은 숲에 머물게 하고, 마을 주변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은 마을 주변에 머물게 하라. 탁발 음식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탁발 음식으로 살게 하고, 공양청을 원하는 사람은 공양청을 받게 하라. 분소의 만을 입기를 원하는 자는 분소의 만을 입게 하고, 장자가 보시하는 가사를 원하는 자는 장자가 보시하는 옷을 입게 하라. 데와닷따여, 나는 여덟 달 동안 나무 밑에 사는 것을 허락했고, 보이지 않은 것, 들리지 않은 것, 의심되지 않는 것의 세 가지 점에서 청정한 생선과 고기를 허락했다.” 그러자 데와닷따는 “세존은 이 다섯 가지 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고 기뻐하고 의기양양하여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돌아갔다.
데와닷따는 사람들과 함께 라자가하에 들어가서 다섯 가지 사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 “도반들이여, 우리는 사문 고따마에게 가서 다섯 가지 사안을 요청했습니다. ―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원함이 적고, 만족하고, 더 높은 삶을 살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찬탄하여 말합니다. 대덕이시여, 이 다섯 가지 사안은 다양한 방법으로 원함이 적고, 만족하고, 더 높은 삶을 살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이끕니다. 철저하게, 대덕이시여, 비구들은 죽을 때까지 숲에 머물러야 합니다. 마을 주변에 들어오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탁발 음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공양청을 받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분소의 만을 입어야 합니다. 장자가 보시하는 가사를 입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나무 밑에 살아야 합니다.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합니다. 생선과 고기를 먹는 것은 결점이 될 것입니다.’라고. 사문 고따마는 이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다섯 가지 사안을 받아들여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거기서 믿음이 없고 분명함이 없고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은 “사문 사꺄의 아들인 이들은 제거하고 더 높은 삶을 산다. 그러나 풍족하게 사는 사문 고따마는 풍족한 삶을 의도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믿음이 있고 분명함이 있고 현명하고 배웠고 깨달음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데와닷따는 세존의 상가를 분열시키고, 법륜을 분열시키기 위해 애쓸 수 있는가!”라고 속을 태우고 낙담하고 열을 내었다. 그 사람들이 속을 태우고 낙담하고 열을 내는 것을 비구들이 들었다. 바라는 것이 적고, 만족하고, 수치심이 있고, 성실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비구들은 “어떻게 데와닷따는 세존의 상가를 분열시키고, 법륜을 분열시키기 위해 애쓸 수 있는가!”라고 속을 태우고 낙담하고 열을 내었다. 그 비구들은 데와닷따를 여러 방법으로 꾸짖은 뒤에 세존에게 이런 뜻을 알렸다. 그러자 세존은 이런 인연에 대해, 이런 경우에 대해 비구 상가를 모이게 한 뒤에 데와닷따에게 물었다 - “데와닷따여, 그대가 상가를 분열시키고, 법륜을 분열시키기 위해 애쓴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불(佛) 세존(世尊)은 꾸짖었다. ― “쓸모없는 자여, 타당하지 않고 적절하지 않고 알맞지 않고 사문의 삶의 아니고 부당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한 것이다. 쓸모없는 자여, 어떻게 그대는 상가를 분열시키고, 법륜을 분열시키기 위해 애쓸 것인가! 쓸모없는 자여, 나는 여러 방법으로 탐(貪) 있음이 아니라 이탐(離貪)을 위한 법을 설했고, 속박이 아니라 속박에서 벗어남을 위한 법을 설했고, 집착 있음이 아니라 집착 없음을 위한 법을 설하지 않았는가! 거기서, 쓸모없는 자여, 그대는 내가 이탐(離貪)을 위해 설한 법에 대해 탐(貪) 있음을 의도할 것이고, 속박에서 벗어남을 위해 설한 법에 대해 속박을 의도할 것이고, 집착 없음을 위해 설한 법에 대해 집착을 의도할 것이다! 쓸모없는 자여, 나는 여러 방법으로 탐(貪)의 바램을 위한 법을 설했고, 자기화를 억누르기 위한, 갈증의 제어를 위한, 집착의 경향을 뿌리 뽑기 위한, 윤회를 끊기 위한, 갈애의 부서짐을 위한, 이탐(離貪)을 위한, 소멸(消滅)을 위한, 열반(涅槃)을 위한 법을 설하지 않았는가! 쓸모없는 자여, 나는 여러 방법으로 소유의 삶의 버림을 선언하고, 소유의 상(想)[욕상(慾想)]의 완전한 지혜를 선언하고, 소유의 갈증의 억누름을 선언했고, 소유의 위딱까의 뿌리 뽑음을 선언했고, 소유의 열기의 가라앉음을 선언하지 않았는가! 쓸모없는 자여, 그것은 믿음이 없는 자들을 믿음으로 이끌고, 믿음이 있는 자들을 더욱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다. 쓸모없는 자여, 그것은 오히려 믿음이 없는 자들을 불신으로 이끌고 믿음이 있는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을 변화로 이끈다.”라고. 그리고 세존은 데와닷따를 여러 방법으로 꾸짖은 뒤에 유지하기 어렵고, 부양하기 어렵고, 바람이 많고, 만족하지 못하고, 교제를 좋아하고, 게으른 것을 나무랐다. 다양한 방법으로 유지하기 쉽고, 부양하기 쉽고, 바람이 적고, 만족하고, 벗어남을 실천하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찬탄하여 말한 뒤에 비구들에게 알맞고 적절한 법의 말씀을 말하고서 비구들에게 말했다. ―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열 가지 이유를 연(緣)하여 비구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할 것이다. ― ①승가의 뛰어남을 위하여, ②승가의 편안함을 위하여, ③침묵하기 힘든 자들을 억제하기 위하여, ④잘 행동하는 비구들의 편안한 머묾을 위하여, ⑤지금여기에 속하는 번뇌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⑥다음 생에 속하는 번뇌들을 저항하기 위하여, ⑦믿음이 없는 자들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하여, ⑧믿음이 있는 자들을 더욱 확대시키기 위하여, ⑨정법(正法)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⑩율(律)을 보조하기 위하여.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런 학습계율을 암송해야 한다. ―
‘화합된 상가의 분열을 꾀하거나 분열로 이끄는 분쟁을 받아들이고 지지하며 머무는 비구에게 비구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 ‘존자는 화합된 상가의 분열을 꾀하거나 분열로 이끄는 분쟁을 받아들이고 지지하며 머물지 마시오. 존자는 상가와 화합하시오. 화합된 상가는 뜻이 맞고 다투지 않고 일치된 해석으로 편안히 머뭅니다.’라고. 그런데 비구들이 이렇게 말을 해도 그 비구가 그렇게 지지하면 비구들은 그 지지를 철회시키기 위해 세 번까지 그 비구와 함께 대화해야 한다. 만약 세 번의 대화 안에 그 지지를 철회하면, 이렇게 해서 그것은 유익하다. 만약 철회하지 않으면 승단잔류죄이다.’
‘어떤’이란 ㅡ 관계, 태생, 이름, 성, 계행(戒行), 거처, 영역에 대해 어떤 것이든, 장로거나 신참이거나 중진이거나 이것이 ‘어떤’이라고 불린다.
‘비구’란 ㅡ 탁발하는 비구, 탁발을 위해 돌아다니며 얻는 비구, 분소의를 입는 비구, 사미인 비구, 자칭에 의한 비구, ‘오라, 비구여!’에 의한 비구, 삼귀의에 의해 비구계를 받은 비구, 존엄한 비구, 뛰어난 비구, 유학(有學)인 비구, 무학(無學)인 비구, 화합 승가의 네 번 발표[한 번 제안, 세 번 제청]의 절차와 부동(不動)의 아라한의 경지에 의해 비구계를 받은 비구가 있다. 거기에서 화합 승가의 네 번 발표[한 번 제안, 세 번 제청]의 절차와 부동(不動)의 아라한의 경지에 의해 비구계를 받은 이 비구가 이 의미에서 의도된 비구이다.
화합된 상가는 동등하게 함께 살고, 동일한 시마[결계(結界)]에서 같이 머무는 상가이다.
‘분열을 꾀한다.’라는 것은 ‘어떻게 이런 차이를 있게 하고, 분리되게 하고, 논쟁을 일으킬까!’라고 분당을 추구하고, 무리를 결성하는 것이다.
‘분열로 이끄는 분쟁’이라는 것은 열여덟 가지 분쟁을 가져오는 사안이다.
samādāyāti ādāya.
‘받아들이고’라는 것은 받아들인 것을 말한다.
paggayhāti dīpeyya.
‘지지하며’라는 것은 분명히 하는 것이다.
tiṭṭheyyāti na paṭinissajjeyya.
‘머무는’이라는 것은 철회하지 않는 것이다.
so bhikkhūti yo so saṅghabhedako bhikkhu.
‘그 비구’라는 것은 상가를 분열을 꾀하는 비구이다.
bhikkhūhīti aññehi bhikkhūhi.
‘비구들’이라는 것은 다른 비구들이다.
보고 들은 비구들은 ‘존자는 화합된 상가의 분열을 꾀하거나 분열로 이끄는 분쟁을 받아들이고 지지하며 머물지 마시오. 존자는 상가와 화합하시오. 화합된 상가는 뜻이 맞고 다투지 않고 일치된 해석으로 편안히 머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두 번째도 말해야 하고, 세 번째도 말해야 한다. 만약에 철회하면, 이렇게 해서 그것은 유익하다. 만약 철회하지 않으면 악작죄를 짓는 것이다. 그들이 듣고도 말하지 않으면 악작죄를 짓는 것이다. 그 비구를 상가 가운데에 데려다 놓고 ‘존자는 화합된 상가의 분열을 꾀하거나 분열로 이끄는 분쟁을 받아들이고 지지하며 머물지 마시오. 존자는 상가와 화합하시오. 화합된 상가는 뜻이 맞고 다투지 않고 일치된 해석으로 편안히 머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두 번째도 말해야 하고, 세 번째도 말해야 한다. 만약에 철회하면, 이렇게 해서 그것은 유익하다. 만약 철회하지 않으면 악작죄를 짓는 것이다. 그 비구와 함께 대화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함께 대화해야 한다. 잘 배우고 능숙한 비구가 상가에 알려야 한다. ―
‘대덕들이여, 상가는 나의 말을 들으십시오. 이런 이름의 이 비구가 화합된 상가의 분열을 꾀했습니다. 그는 그 사안을 철회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상가가 옳다고 한다면, 상가는 이런 이름의 비구를 위해 그 사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함께 대화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안입니다.
‘대덕들이여, 상가는 나의 말을 들으십시오. 이런 이름의 이 비구가 화합된 상가의 분열을 꾀했습니다. 그는 그 사안을 철회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상가가 옳다고 한다면, 상가는 이런 이름의 비구를 위해 그 사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함께 대화할 것입니다. 이런 이름의 비구를 위해 그 사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함께 대화하는 것에 동의하는 존자는 침묵하시고, 동의하지 않는 존자는 말씀하십시오.
두 번째도 이런 의미를 말합니다. … 세 번째도 이런 의미를 말합니다. ― 대덕들이시여, 상가는 나의 말을 들으십시오. 이런 이름의 이 비구가 화합된 상가의 분열을 꾀했습니다. 그는 그 사안을 철회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상가가 옳다고 한다면, 상가는 이런 이름의 비구를 위해 그 사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함께 대화할 것입니다. 이런 이름의 비구를 위해 그 사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함께 대화하는 것에 동의하는 존자는 침묵하시고, 동의하지 않는 존자는 말씀하십시오.
상가는 이런 이름의 비구를 위해 그 사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함께 대화하였고, 상가의 비구들은 동의하여 침묵하였습니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받아들입니다.”라고.
제안에 의해서 악작죄, 두 번의 제청에 의해서 추악죄, 제정의 끝냄에 의해서 승단잔류죄를 짓는다. 승단잔류죄를 저지른 자에게 제안에 의한 악작죄와 두 번의 제청에 의한 추악죄가 지워진다.
‘상가디세사(승단잔류죄)’는 상가가 그것을 범한 자를 보호관찰하고, 뿌리를 제거하고, 참회하게 하고, 복귀시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니고, 한 사람도 아니다. 그것에 의해서 ‘상가디세사(승단잔류죄)’라고 불린다. 그것을 범한 자의 무리에 대한 갈마의 이름을 지시함에 의해서도 ‘상가디세사(승단잔류죄)’라고 불린다.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는 절차에 대해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는 절차의 표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상가디세사의 잘못이다.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는 절차에 대한 의심을 포기하지 않으면 상가디세사의 잘못이다.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는 절차에 대해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절차의 표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상가디세사의 잘못이다.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절차에 대해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는 절차의 표기기 있으면 둑까따의 잘못이다.
adhammakamme vematiko, āpatti dukkaṭassa.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절차에 대한 의심이 있으면 둑까따의 잘못이다.
adhammakamme adhammakammasaññī, āpatti dukkaṭassa.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절차에 대한 율(律)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절차의 표기가 있으면 둑까따의 잘못이다.
대화되지 못한 자, 포기한 자, 미친 자, 심(心)이 혼란한 자, 고통스러워하는 자, 처음인 자는 범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