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poṭṭhapādasuttaṃ, sahetukasaññuppādanirodhakathā (DN 9.3-뽓타빠다 경, 상(…
9. poṭṭhapādasuttaṃ, sahetukasaññuppādanirodhakathā (DN 9.3-뽓타빠다 경, 상(想)은 원인과 함께 생기고 소멸함)
“거기서 뽓타빠다여, ‘원인도 조건도 없이 사람에게 상(想)은 생기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라는 생각하는 사문-바라문들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뽓타빠다여, 사람에게 상(想)은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생기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생기고,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소멸한다.”
“그러면 공부는 어떤 것이 있는가?”라고 세존은 말했다. ― “여기, 뽓타빠다여, 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佛)-세존(世尊)인 여래(如來)가 세상에 출현한다. … 이런 성스러운 계온(戒蘊)을 갖춘 그는 안으로 피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을 경험한다. 이렇게, 뽓타빠다여, 비구는 계를 갖춘 자이다. … 자신에게서 이런 다섯 가지 장애의 버려짐을 보는 그에게 환희가 생긴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기쁨]이 생긴다. 의(意)가 희열하면 몸이 진정되고, 몸이 진정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심(心)은 삼매에 들어진다. 그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욕상(慾想)이 소멸한다. 그때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있고, 그때 오직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을 가진 자가 있다. 이렇게도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생기고,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소멸한다. 이것이 공부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다시, 뽓타빠다여, 비구는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떨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의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소멸한다. 그때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있고, 그때 오직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을 가진 자가 있다. 이렇게도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생기고,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소멸한다. 이것이 공부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다시, 뽓타빠다여, 비구는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소멸한다. 그때 평정의 행복을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있고, 그때 오직 평정의 행복을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을 가진 자가 있다. 이렇게도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생기고,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소멸한다. 이것이 공부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다시, 뽓타빠다여, 비구는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평정의 행복을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소멸한다. 그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있고, 그때 오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을 가진 자가 있다. 이렇게도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생기고,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소멸한다. 이것이 공부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다시, 뽓타빠다여, 비구는 완전하게 색상(色想)을 넘어서고, 저항의 상(想)이 줄어들고, 다양한 상(想)을 작의(作意)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색상(色想)이 소멸한다. 그때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있고, 그때 오직 공무변처를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을 가진 자가 있다. 이렇게도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생기고,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소멸한다. 이것이 공부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다시, 뽓타빠다여,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소멸한다. 그때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있고, 그때 오직 식무변처를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을 가진 자가 있다. 이렇게도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생기고,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소멸한다. 이것이 공부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다시, 뽓타빠다여,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에게 이전의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소멸한다. 그때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이 있고, 그때 오직 무소유처를 수반하는 훌륭하고 진실된 상(想)을 가진 자가 있다. 이렇게도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생기고, 어떤 상(想)은 공부를 통해 소멸한다. 이것이 공부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뽓타빠다여, 비구가 여기에서 자신의 상(想)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그는 거듭 거기로부터 점진적으로 상(想)의 끝에 닿는다. 상(想)의 끝에 머무는 그는 ‘내가 의도하는 것은 나쁘고, 내가 의도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만약 내가 의도하고 형성한다면 나에게 이 상(想)들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상(想)들이 생길 것이다. 나는 의도하지 않고 형성하지 않아야겠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의도하지도 않고, 형성하지도 않는다. 의도하지도 않고 형성하지도 않는 그에게 그 상들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상들은 생기지 않는다. 그는 소멸에 닿는다. 이렇게, 뽓타빠다여, 점진적인 높은 상(想)의 소멸에 대한 바른 앎의 증득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뽓타빠다여, 그대는 이전에 이런 점진적인 높은 상(想)의 소멸에 대한 바른 앎의 증득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의 말씀을 ‘뽓타빠다여, 비구가 여기에서 자신의 상(想)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그는 거듭 거기로부터 점진적으로 상(想)의 끝에 닿는다. 상(想)의 끝에 머무는 그는 “내가 의도하는 것은 나쁘고, 내가 의도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만약 내가 의도하고 형성한다면 나에게 이 상(想)들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상(想)들이 생길 것이다. 나는 의도하지 않고 형성하지 않아야겠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의도하지도 않고, 형성하지도 않는다. 의도하지도 않고 형성하지도 않는 그에게 그 상들은 소멸하고, 다른 거친 상들은 생기지 않는다. 그는 소멸에 닿는다. 이렇게, 뽓타빠다여, 점진적인 높은 상(想)의 소멸에 대한 바른 앎의 증득이 있다.’라고 이해합니다.” “그렇다, 뽓타빠다여.”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오직 하나의 상(想)의 끝을 선언합니까, 아니면 개별적인 상(想)의 끝도 선언합니까?” “뽓타빠다여, 나는 하나의 상(想)의 끝도 선언하고, 개별적인 상(想)의 끝도 선언한다.” “그것과 관련하여,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어떤 하나의 상(想)의 끝을 선언하고, 개별적인 상(想)의 끝들을 선언합니까?” “뽓타빠다여, 소멸에 닿을 때마다 나는 상(想)의 끝을 선언한다. 이렇게 나는, 뽓타빠다여, 하나의 상(想)의 끝도 선언하고, 개별적인 상(想)의 끝도 선언한다.”
• uppajjati: to come out, to arise, to be produced, to be born or reborn, to come into existence 나오다. 생기다. 태어나다.
“대덕이시여, 상(想)이 먼저 생기고, 앎이 나중에 생깁니까, 아니면 앎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상(想)이 생깁니까, 아니면 상과 앎이 선후 없이 생깁니까?” “뽓타빠다여, 상(想)이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앎이 생긴다. 또한, 상(想)이 일어날 때 앎이 생긴다. 그는 ‘참으로 이것을 조건으로 나에게 앎이 생긴다.’라고 꿰뚫어 안다. ‘상(想)이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앎이 생긴다. 또한, 상(想)이 일어날 때 앎이 생긴다.’라는 방식으로, 뽓타빠다여, 이것이 알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