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sabbāsavasuttaṃ (MN 2-모든 번뇌 경)
1. mūlapariyāyavaggo, 2. sabbāsavasuttaṃ (MN 2-모든 번뇌 경)
• (MN 2.1)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거기서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모든 번뇌의 단속을 위한 법문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라고.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을 나는 말한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에게가 아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을 나는 말하는가? 여리작의(如理作意-사실에 들어맞는 작의)와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사실에 어긋난 작의)이다. 비구들이여, 사실에 어긋나게 작의 하는 자에게 생기지 않은 번뇌들은 생기고, 생겨난 번뇌들은 늘어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사실에 들어맞게 작의 하는 자에게 생기지 않은 번뇌들은 생기지 않고, 생겨난 번뇌들은 버려진다.
비구들이여, 봄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단속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수용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참음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피함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제거를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수행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 dassanā pahātabbāsavā (MN 2.2) ― 봄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
※ mano(manas) 즉 의(意)를 행위와 인식의 두 자리에 적용하여 ‘manasi karoti 사고(思考)하다, manasikaroti 작의(作意) 하다’로 구분하여 번역하였습니다. 현재분사인 manasikarota와 미래수동분사인 manasikaraṇīya는 manasikaroti의 분사로 간주하여 ‘작의 하는 자’와 ‘작의 해야 하는 것’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사고하는 행위가 chanda(관심)에 의해 인식으로 순환하여 작의 하는 순환 구조를 고려한 해석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해석이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경에서 행위와 인식의 두 자리를 구분하기 번역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봄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대해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서 훈련되지 못하고, 고결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고결한 법에 대해 능숙하지 못하고, 고결한 법에서 훈련되지 못한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작의 해야 하는 법들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작의 하지 않아야 하는 법들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 작의 해야 하는 법들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작의 하지 않아야 하는 법들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그는 작의 하지 않아야 하는 법들을 사고하고, 작의 해야 하는 법들을 사고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작의 하지 않아야 하는 법들을 사고하는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작의 하는 자에게 생기지 않은 소유의 번뇌[욕루(慾漏)]가 생기고, 생겨난 소유의 번뇌가 늘어난다.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유루(有漏)]가 생기고, 생겨난 존재의 번뇌가 늘어난다.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무명루(無明漏)]가 생기고, 생겨난 무명의 번뇌가 늘어난다. ― 작의 하지 않아야 하는 이런 법들을 사고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작의 해야 하는 법들을 사고하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작의 하는 자에게 생기지 않은 소유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생겨난 소유의 번뇌는 버려진다.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생겨난 존재의 번뇌는 버려진다.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생겨난 무명의 번뇌는 버려진다. ― 작의 해야 하는 이런 법들을 사고하지 않는다.
작의 하지 않아야 하는 법들을 작의 하고, 작의 해야 하는 법들을 작의 하지 않는 그에게 생기지 않은 번뇌들은 생기고 생겨난 번뇌들은 늘어난다.
그는 이렇게 사실에 어긋나게 사고한다. ― ‘나는 과거에 있었을까? 과거에 없었을까? 과거에 무엇이었을까? 과거에 어떻게 있었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이 되었을까? 나는 미래에 존재할까?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까? 미래에 무엇이 될까? 미래에 어떻게 존재할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이 될까?’라고. 지금 현재에 안으로 의심이 있다. ― ‘나는 있을까? 나는 없을까? 무엇으로 있을까? 어떻게 있을까? 이 중생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가는 자가 될까?’라고.
이렇게 사실에 어긋나게 작의 하는 그에게 여섯 가지 견해 가운데 어떤 견해가 생긴다. 진실과 신뢰로부터 ‘나에게 아(我)가 있다.’라는 견해가 생긴다. 또는 진실과 신뢰로부터 ‘나에게 아가 없다.’라는 견해가 생긴다. 또는 진실과 신뢰로부터 ‘나는 아로부터 아를 상(想)한다.’라는 견해가 생긴다. 또는 진실과 신뢰로부터 ‘나는 아로부터 무아(無我)를 상한다.’라는 견해가 생긴다. 또는 진실과 신뢰로부터 ‘나는 무아로부터 아를 상한다.’라는 견해가 생긴다. 그리고 이런 견해가 있다. ― ‘말하는 것이고, 경험되는 것이고, 여기저기서 선악의 업들의 보를 경험하는 나의 이 아는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로서 언제까지나 그렇게 서 있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견해의 치우침, 견해의 두터움, 견해가 길들지 않음, 견해의 꿈틀거림, 견해의 몸부림, 견해의 족쇄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견해의 족쇄에 묶인 배우지 못한 범부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고통과 고뇌와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사람을 만나고, 성스러운 법에 대해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서 훈련되고, 고결한 사람을 만나고, 고결한 법에 대해 능숙하고, 고결한 법에서 훈련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작의(作意) 해야 하는 법들을 분명히 알고, 작의(作意) 하지 않아야 하는 법들을 분명히 안다. 작의(作意) 해야 하는 법들을 분명히 알고, 작의(作意) 하지 않아야 하는 법들을 분명히 아는 그는 작의 하지 않아야 하는 법들을 사고하지 않고, 작의 해야 하는 법들을 사고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작의 하지 않아야 하는 법들을 사고하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작의 하는 자에게 생기지 않은 소유의 번뇌가 생기고, 생겨난 소유의 번뇌가 늘어난다.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가 생기고, 생겨난 존재의 번뇌가 늘어난다.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가 생기고, 생겨난 무명의 번뇌가 늘어난다. ― 작의 하지 않아야 하는 이런 법들을 사고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작의 해야 하는 법들을 사고하는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작의 하는 자에게 생기지 않은 소유의 번뇌가 생기지 않고, 생겨난 소유의 번뇌가 버려진다.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생겨난 존재의 번뇌는 버려진다.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생겨난 무명의 번뇌는 버려진다. ― 작의 해야 하는 이런 법들을 사고한다.
작의 하지 않아야 하는 법들을 작의 하지 않고, 작의 해야 하는 법들을 작의 하는 그에게 생기지 않은 번뇌들은 생기지 않고, 생겨난 번뇌들은 버려진다.
그는 ‘이것이 고(苦)다.’라고 사실에 들어맞게 사고한다. ‘이것이 고의 자라남[고집(苦集)]이다.’라고 사실에 들어맞게 사고한다. ‘이것이 고의 소멸[고멸(苦滅)]이다.’라고 사실에 들어맞게 사고한다. ‘이것이 고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고멸도(苦滅道)]이다.’라고 사실에 들어맞게 사고한다. 이렇게 사실에 들어맞게 작의 하는 그에게 유신견(有身見)과 의심과 계금취(戒禁取)의 세 가지 족쇄들이 버려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봄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라고 불린다.
• saṃvarā pahātabbāsavā (MN 2.3) ― 단속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
비구들이여, 무엇이 단속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안근(眼根)을 단속하는 자로 머문다. 비구들이여, 안근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고, 이렇게 스스로 안근을 단속하며 머무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이근(耳根)을 단속하는 자로 머문다. … 비근(鼻根)을 단속하는 자로 머문다. … 설근(舌根)을 단속하는 자로 머문다. … 신근(身根)을 단속하는 자로 머문다. …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의근(意根)을 단속하는 자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의근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고, 이렇게 스스로 의근을 단속하며 머무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고, 이렇게 스스로 단속하며 머무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단속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라고 불린다.
• paṭisevanā pahātabbāsavā (MN 2.4) ― 수용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
비구들이여, 무엇이 수용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가사를 수용한다. ― ‘오직 추위에 저항하고, 더위에 저항하고, 파리-모기-바람-햇빛-파충류에 닿음에 저항하기 위한 만큼, 부끄러움을 일으키는 부분을 가리기 위한 목적만큼.’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탁발 음식을 수용한다. ― ‘달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여분을 위해서도 아니고, 꾸밈을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이 몸을 유지할 영양을 위한 만큼, 해침을 자제할 만큼, 범행에 도움이 되기 위한 만큼. 이렇게 나는 이전의 느낌을 부수고,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의 삶은 흠 잡을 데 없고, 안락한 생활양식이 유지될 것이다.’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거처를 수용한다. ― ‘오직 추위에 저항하고, 더위에 저항하고, 파리-모기-바람-햇빛-파충류에 닿음에 저항하기 위한 만큼, 계절적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홀로 머묾을 즐길 목적만큼.’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을 수용한다. ― ‘오직 일어난 고통스러운 느낌들에 저항하고, 최상의 거슬림 없음을 위한 만큼.’
비구들이여, 수용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고, 이렇게 스스로 수용하며 머무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수용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라고 불린다.
• adhivāsanā pahātabbāsavā (MN 2.5) ― 참음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
비구들이여, 무엇이 참음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추위와 더위와 허기와 갈증을 참는다. 파리-모기-바람-햇빛-파충류에 닿음과 심하고 언짢은 말들과 괴롭고 날카롭고 예리하고 고통스럽고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생겨난 몸에 속한 느낌들이 참아야 하는 것들에 속한다.
비구들이여, 참지 않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고, 이렇게 스스로 참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참음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라고 불린다.
• parivajjanā pahātabbāsavā (MN 2.6) ― 피함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
비구들이여, 무엇이 피함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난폭한 코끼리를 피하고, 난폭한 말을 피하고, 난폭한 소를 피하고, 난폭한 개를 피하고, 뱀과 그루터기와 가시가 있는 나무토막과 웅덩이와 절벽과 오물 구덩이와 마을 주변의 더러운 물웅덩이를 피한다. 그는 앉아 있는 그 적절하지 않은 자리, 행동하고 있는 그 적절하지 않은 영역, 현명한 동료수행자들을 나쁜 형편에 처하게 할 수 있도록 교제하는 그 나쁜 친구들을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피한다.
비구들이여, 피하지 않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고, 이렇게 스스로 피하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피함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라고 불린다.
• vinodanā pahātabbāsavā (MN 2.7) ― 제거를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
비구들이여, 무엇이 제거를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생겨난 소유의 생각을 떠오르게 두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장내고 존재하지 않게 한다. 분노의 생각을 … 폭력의 떠오름을 … 반복 생겨나는 악한 불선법들을 생겨나게 두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장내고 존재하지 않게 한다.
비구들이여, 제거하지 않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고, 이렇게 스스로 제거하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제거를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라고 불린다.
• bhāvanā pahātabbāsavā (MN 2.8) ― 수행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
비구들이여, 무엇이 수행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떨침의 과정이고, 이탐의 과정이고, 소멸의 과정이고, 쉼으로 귀결되는 염각지(念覺支)를 닦는다. 사실에 들어맞게 가늠하면서 … 택법각지(擇法覺支)를 닦는다. … 정진각지(精進覺支)를 닦는다. … 희각지(喜覺支)를 닦는다. … 경안각지(輕安覺支)를 닦는다. … 정각지(定覺支)를 닦는다. … 떨침의 과정이고, 이탐의 과정이고, 소멸의 과정이고, 쉼으로 귀결되는 사각지(捨覺支)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수행하지 않는 자에게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생길 것이고, 이렇게 스스로 수행하는 자에게 그 번뇌와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수행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봄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봄을 통해서 버려지고, 단속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단속을 통해서 버려지고, 수용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수용을 통해서 버려지고, 참음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참음을 통해서 버려지고, 피함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피함을 통해서 버려지고, 제거를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제거를 통해서 버려지고, 수행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수행을 통해서 버려졌을 때,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든 번뇌를 단속하면서 머문다. 애(愛)를 잘랐고, 족쇄를 풀었고, 자기화의 바른 관통을 통해 괴로움을 끝냈다.’라고 불린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들은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