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hāassapurasuttaṃ (MN 39-앗사뿌라 큰 경)
4. mahāyamakavaggo, 9. mahāassapurasuttaṃ (MN 39-앗사뿌라 큰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앙가에서 앗사뿌라라는 앙가의 번화가에 머물렀다. 그때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사람들은 그대들을 ‘사문, 사문’이라고 부른다. ‘그대들은 누구입니까?’라고 질문받은 그대들도 ‘우리는 사문입니다.’라고 인정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불리고, 이렇게 인정하는 그대들은 참으로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 ‘사문을 만들고 바라문을 만드는 법들을 받아들여 실천하리라. 이렇게 이것이 우리에게 우리의 사문 됨을 진실케 하고, 인정을 사실이 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을 마련해준 그들에게 우리 위에서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출가는 불임(不姙)이 아니어서 결실이 있고 수확이 있을 것이다.’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사문을 만들고 바라문을 만드는 법들은 무엇인가? ‘히리와 옷땁빠를 갖출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공부해야 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우리는 히리와 옷땁빠를 갖추었다. 이만큼 만들었으니 이만큼이면 되었다. 우리는 사문 됨의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대들은 이만큼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린다. — ‘사문 됨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더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몸의 행실이 청정하여 드러내 보이고 감추지 않고 결점이 없고 단속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 몸의 행실의 청정을 이유로 자신을 칭찬하지도 남을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우리는 히리와 옷땁빠를 갖추었고, 몸의 행실이 청정하다. 이만큼 만들었으니 이만큼이면 되었다. 우리는 사문 됨의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대들은 이만큼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린다. — ‘사문 됨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더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말의 행실이 청정하여 드러내 보이고 감추지 않고 결점이 없고 단속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 말의 행실의 청정을 이유로 자신을 칭찬하지도 남을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우리는 히리와 옷땁빠를 갖추었고, 몸의 행실이 청정하고, 말이 행실이 청정하다. 이만큼 만들었으니 이만큼이면 되었다. 우리는 사문 됨의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대들은 이만큼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린다. — ‘사문 됨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더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의(意)의 행실이 청정하여 드러내 보이고 감추지 않고 결점이 없고 단속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 의(意)의 행실의 청정을 이유로 자신을 칭찬하지도 남을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우리는 히리와 옷땁빠를 갖추었고, 몸의 행실이 청정하고, 말이 행실이 청정하고, 의(意)의 행실이 청정하다. 이만큼 만들었으니 이만큼이면 되었다. 우리는 사문 됨의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대들은 이만큼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린다. — ‘사문 됨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더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생활이 청정하여 드러내 보이고 감추지 않고 결점이 없고 단속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 생활의 청정을 이유로 자신을 칭찬하지도 남을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우리는 히리와 옷땁빠를 갖추었고, 몸의 행실이 청정하고, 말이 행실이 청정하고, 의(意)의 행실이 청정하고, 생활이 청정하다. 이만큼 만들었으니 이만큼이면 되었다. 우리는 사문 됨의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대들은 이만큼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린다. — ‘사문 됨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더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는 자가 될 것이다.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수(受)를 붙잡지 않는다. 안근(眼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간탐과 불만과 악한 불선법들이 흘러들어 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할 것이다. 안근을 보호하고, 안근에서 단속할 것이다.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닿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인식하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수(受)를 붙잡지 않을 것이다. 의근(意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간탐과 불만과 악한 불선법들이 흘러들어 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할 것이다. 의근을 보호하고, 의근에서 단속할 것이다. 이 성스러운 기능의 단속을 갖춘 그는 안으로 뿌려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우리는 히리와 옷땁빠를 갖추었고, 몸의 행실이 청정하고, 말의 행실이 청정하고, 의(意)의 행실이 청정하고, 생활이 청정하고,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한다. 이만큼 만들었으니 이만큼이면 되었다. 우리는 사문 됨의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대들은 이만큼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린다. — ‘사문 됨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더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음식의 적당량을 알 것이다. 사실에 들어맞게[여리(如理)] 가늠하면서 음식을 먹을 것이다. ― ‘달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여분을 위해서도 아니고, 꾸밈을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이 몸을 유지할 영양을 위한 만큼, 해침을 자제할 만큼, 범행에 도움이 되기 위한 만큼. 이렇게 나는 이전의 느낌을 부수고,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의 삶은 흠 잡을 데 없고, 안락한 생활양식이 유지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우리는 히리와 옷땁빠를 갖추었고, 몸의 행실이 청정하고, 말이 행실이 청정하고, 의(意)의 행실이 청정하고, 생활이 청정하고,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고, 음식의 적당량을 안다. 이만큼 만들었으니 이만큼이면 되었다. 우리는 사문 됨의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대들은 이만큼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린다. — ‘사문 됨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더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깨어있음을 닦을 것이다. 낮 동안에는 경행(輕行)을 수반한 앉음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심(心)을 청정케 할 것이다. 밤의 초삼분(初三分) 동안에는 경행(輕行)을 수반한 앉음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심(心)을 청정케 할 것이다. 밤의 중삼분(中三分) 동안에는 발에 발을 포개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일어남의 상(想)을 작의(作意)한 후 오른쪽으로 사자처럼 누울 것이다. 밤의 후삼분(後三分) 동안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경행(輕行)을 수반한 앉음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심(心)을 청정케 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우리는 히리와 옷땁빠를 갖추었고, 몸의 행실이 청정하고, 말이 행실이 청정하고, 의(意)의 행실이 청정하고, 생활이 청정하고,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고, 음식의 적당량을 알고, 깨어있음을 닦는다. 이만큼 만들었으니 이만큼이면 되었다. 우리는 사문 됨의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대들은 이만큼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린다. — ‘사문 됨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더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염(念)-정지(正知)를 갖출 것이다.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구부릴 때도 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대가사와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똥과 오줌을 눌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갈 때도-설 때도-앉을 때도-잠잘 때도-깨어있을 때도-말할 때도-침묵할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또한,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우리는 히리와 옷땁빠를 갖추었고, 몸의 행실이 청정하고, 말이 행실이 청정하고, 의(意)의 행실이 청정하고, 생활이 청정하고,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고, 음식의 적당량을 알고, 깨어있음을 닦고, 염(念)-정지(正知)를 갖출 것이다. 이만큼 만들었으니 이만큼이면 되었다. 우리는 사문 됨의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대들은 이만큼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비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알린다. — ‘사문 됨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더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문 됨의 목적이 낮아지게 하지 말라.’라고.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더 해야 하는 것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오후에 다리를 교차하고, 몸을 곧게 뻗치고, 콧구멍 주위에 사띠를 준비한 채 앉아있다. 그는 세상에 대한 간탐을 버린 뒤에 간탐에서 벗어난 심(心)으로 머물고, 간탐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진에의 거침을 버린 뒤에 거슬리지 않은 심으로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물고, 진에의 거침으로부터 심(心)을 청정케 한다. 해태-혼침을 버린 뒤에 해태-혼침 없이 광명상(光明想)을 가지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갖추어 머물고, 해태-혼침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들뜸-후회를 버린 뒤에 휘저어지지 않아 안으로 가라앉은 심으로 머물고, 들뜸-후회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의심을 버린 뒤에 의심을 건너 유익한 법들에 대해 불확실함을 가지지 않고 머물고, 의심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사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에게 그 사업은 성공할 것이고, 그는 이전의 빚을 갚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아내를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그 사업은 성공했고, 나는 이전의 빚을 갚았다. 더 나아가 아내를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환희를 얻고 만족을 얻을 것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병에 걸려 낙담하고 심하게 아픈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밥도 아픔을 덮지 못할 것이고, 몸에 약간의 힘도 없을 것이다. 나중에 그는 그 병으로부터 회복할 것이다. 밥은 기쁨을 줄 것이고, 몸에 약간의 힘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 ‘나는 전에 병에 걸려 낙담하고 심하게 아팠다. 밥도 나의 아픔을 덮지 못했고, 나의 몸에 약간의 힘도 없었다. 나는 이제 그 병으로부터 회복했다. 밥은 나에게 기쁨을 주고, 나의 몸에 약간의 힘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환희를 얻고 만족을 얻을 것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옥에 갇힌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 그는 그 옥에서 풀려날 것이다. 안전과 두렵지 않음에 의해 어떤 재물들의 손실도 없을 것이다. 그에게 ‘나는 전에 옥에 갇혔었다. 이제 옥에서 풀려난 나는 안전과 두렵지 않음에 의해 나에게 어떤 재물들의 손실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환희를 얻고 만족을 얻을 것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자신을 의지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고, 원함에 의해서 갈 수 없는 하인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 그는 그 하인의 신분에서 풀려나 자신을 의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원함에 의해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 그에게 ‘나는 전에 자신을 의지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고, 원함에 의해서 갈 수 없는 하인이었다. 이제 그 하인의 신분에서 풀려난 나는 자신을 의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원함에 의해서 갈 수 있는 자유인이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환희를 얻고 만족을 얻을 것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부유하고 부자인 사람이 굶주림과 두려움이 있는 사막의 먼 길을 걸을 것이다. 나중에 그는 그 사막을 안전하게 건널 것이고, 두려움이 없이 안온(安穩)한 마을 주변에 도착할 것이다. 그에게 ‘부유하고 부자인 나는 이전에 굶주림과 두려움이 있는 사막의 먼 길을 걸었다. 나는 이제 그 사막을 안전하게 건넜고, 두려움이 없이 안온(安穩)한 마을 주변에 도착했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환희를 얻고 만족을 얻을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빚과 같은, 병과 같은, 옥과 같은, 하인과 같은, 사막의 먼 길과 같은 이런 다섯 가지 장애가 버려지지 않았음을 자신에게서 본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빚 없음과 같은, 병 없음과 같은, 옥에서 풀려남과 같은, 자유인과 같은, 안온(安穩)한 지역과 같은 이런 다섯 가지 장애의 버려짐을 자신에게서 본다.
그는 지혜를 무력화시키는 심(心)의 오염원인 이런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몸 어디라도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능숙한 때밀이나 그의 조수가 청동판에 비누 분말을 흩어 놓고 물을 반복 뿌려가면서 반죽할 것이다. 그러면 그 비누 분말 덩이에 물기가 흡수되고 스며들어 안팎으로 물기가 미치고 흘려보내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몸 어디라도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몸 어디라도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깊고 물이 샘솟는 호수가 있다. 그 호수의 동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서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북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남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하늘에서 때때로 소나기도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호수로부터 차가운 물줄기가 샘솟아 그 호수를 차가운 물로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 호수의 어디라도 이 차가운 물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몸 어디라도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기쁨이 가라앉은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몸 어디라도 기쁨이 가라앉은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있는 연못에서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들이 물속에서 생기고 자라서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무성하게 자라 있고, 차가운 물에 의해 머리에서 뿌리까지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의 전체 어디라도 차가운 물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쁨이 가라앉은 즐거움으로 이 몸을 충만하게 하고 흘러넘치게 하고 가득 차게 하고 고루 미치게 한다. 온몸 어디라도 기쁨이 가라앉은 즐거움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이 몸을 청정하고 아주 깨끗한 심(心)으로 미치게 하고서 앉아있다. 온몸 어디라도 청정하고 아주 깨끗한 심(心)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사람이 머리까지 하얀 천을 덮어쓰고 앉아있을 것이다. 온몸 어디라도 하얀 천에 의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청정하고 아주 깨끗한 심(心)으로 미치게 하고서 앉아있다. 온몸 어디라도 청정하고 아주 깨끗한 심(心)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이전의 존재 상태에 대한 기억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전생 기억]. 그는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한다.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줄어드는[진화] 여러 겁, 세계가 자라나는[퇴보] 여러 겁, 세계가 줄어들고 자라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사람이 자기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갈 것이다. 그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갈 것이다. 그는 그 마을에서 자기 마을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나는 우리 마을에서 이런 마을로 갔다. 거기서도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아있었고, 이렇게 말하였고, 이렇게 침묵하였다. 그 마을에서 이런 마을로 갔다. 거기서도 이렇게 서 있었고, 이렇게 앉아있었고, 이렇게 말하였고, 이렇게 침묵하였다. 나는 그 마을에서 우리 마을로 되돌아왔다.’라고.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이전의 존재 상태에 대한 기억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한다.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줄어드는 여러 겁, 세계가 자라나는 여러 겁, 세계가 줄어들고 자라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한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죽고 다시 태어남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본다.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 ‘이들은 몸으로 나쁜 삶을 살고 말로 나쁜 삶을 살고 의(意)로 나쁜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삶을 살고 말로 좋은 삶을 살고 의(意)로 좋은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렇게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등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문으로 연결된 두 집이 있다. 거기서 중간에 서 있는 눈 있는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 아래위로 걷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죽고 다시 태어남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본다.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 ‘이들은 몸으로 나쁜 삶을 살고 말로 나쁜 삶을 살고 의(意)로 나쁜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삶을 살고 말로 좋은 삶을 살고 의(意)로 좋은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렇게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등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번뇌들의 부서짐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것이 고(苦)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집(苦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멸(苦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이 번뇌[루(漏)]들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집(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소유의 번뇌[욕루(慾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유루(有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하고, 무명(無明)의 번뇌[무명루(無明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첩첩산중에 맑고 순수하고 고요한 호수가 있고, 거기서 눈 밝은 사람이 호숫가에 서서 진주조개, 자갈, 움직이거나 서 있는 고기 떼를 볼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이 호수는 참 맑고 순수하고 고요하다. 거기에 이런 진주조개, 자갈, 움직이거나 서 있는 고기 떼가 있다.’라고.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번뇌들의 부서짐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것이 고(苦)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집(苦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멸(苦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이 번뇌[루(漏)]들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집(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소유의 번뇌[욕루(慾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유루(有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하고, 무명(無明)의 번뇌[무명루(無明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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