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caṅkīsuttaṃ (MN 95-짱끼 경) - 2.진리(眞理)[참]의 보호 - 진리(眞理)[참]에 대한 앎 - 진리(眞…
“고따마 존자시여, 이런 방법으로 진리의 보호가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진리를 보호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진리의 보호를 봅니다. 그런데, 고따마 존자시여, 어떤 측면에서 진리에 대한 앎이 있습니까? 어떤 측면에서 진리를 압니까? 진리에 대한 앎을 우리는 고따마 존자에게 묻습니다.” “여기, 바라드와자여, 비구가 어떤 마을이나 번화가 가까이에 머뭅니다. 그에게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와서는 세 가지 법들 즉 바라기 마련인 법들, 거부하기 마련인 법들, 모르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검증합니다. — ‘바라기 마련인 법들 때문에 소진된 심(心)을 가진 자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라고 말하거나,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라고 말하거나, 또는 남들에게 오랫동안 손해와 고통을 있게 하는 것을 위해 남을 부추길 것인 그런 바라기 마련인 법들이 이 존자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그를 검증하면서 이렇게 압니다. — ‘바라기 마련인 법들 때문에 소진된 심을 가진 자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라고 말하거나,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라고 말하거나, 또는 남들에게 오랫동안 손해와 고통을 있게 하는 것을 위해 남을 부추길 것인 그런 바라기 마련인 법들이 이 존자에게는 없다. 이 존자에게는 바라지 않는 자에게 있는 그런 몸의 행위와 그런 말의 행위가 있다. 그러므로 이 존자가 설하는 법은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딱까[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법은 바라는 자에 의해 잘 설해질 수 없는 것이다.’라고.
그것을 검증하는 자가 바라기 마련인 법들로부터 청정을 관찰할 때 그것을 넘어서 거부하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검증합니다. ‘거부하기 마련인 법들 때문에 소진된 심을 가진 자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라고 말하거나,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라고 말하거나, 또는 남들에게 오랫동안 손해와 고통을 있게 하는 것을 위해 남을 부추길 것인 그런 거부하기 마련인 법들이 이 존자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그를 검증하면서 이렇게 안다. — ‘거부하기 마련인 법들 때문에 소진된 심을 가진 자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라고 말하거나,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라고 말하거나, 또는 남들에게 오랫동안 손해와 고통을 있게 하는 것을 위해 남을 부추길 것인 그런 거부하기 마련인 법들이 이 존자에게는 없다. 그래서 이 존자에게는 거부하지 않는 자에게 있는 그런 몸의 행위와 그런 말의 행위가 있다. 그러므로 이 존자가 설하는 법은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딱까[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법은 거부하는 자에 의해 잘 설해질 수 없는 것이다.’라고.
그것을 검증하는 자가 거부하기 마련인 법들로부터 청정을 관찰할 때 그것을 넘어서 모르기 마련인 법들에 대해 검증합니다. ‘모르기 마련인 법들 때문에 소진된 심을 가진 자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라고 말하거나,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라고 말하거나, 또는 남들에게 오랫동안 손해와 고통을 있게 하는 것을 위해 남을 부추길 것인 그런 모르기 마련인 법들이 이 존자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그를 검증하면서 이렇게 압니다. — ‘모르기 마련인 법들 때문에 소진된 심을 가진 자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라고 말하거나,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라고 말하거나, 또는 남들에게 오랫동안 손해와 고통을 있게 하는 것을 위해 남을 부추길 것인 그런 모르기 마련인 법들이 이 존자에게는 없다. 그래서 이 존자에게는 모르지 않는 자에게 있는 그런 몸의 행위와 그런 말의 행위가 있다. 그러므로 이 존자가 설하는 법은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딱까[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법은 모르는 자에 의해 잘 설해질 수 없는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