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brāhmaṇavaggo, 8. vāseṭṭhasuttaṃ (MN 98-와셋타 경)
5. brāhmaṇavaggo, 8. vāseṭṭhasuttaṃ (MN 98-와셋타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은 잇차낭갈라에서 잇차낭갈라 숲에 머물렀다. 그때 아주 잘 알려진 많은 바라문의 대부호들이 잇차낭갈라에 살고 있었다. 예를 들면, 짱끼 바라문, 따룩카 바라문, 뽁카라사띠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또데이야 바라문과 다른 아주 잘 알려진 많은 바라문의 대부호들이었다. 그때 걸어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돌아다니던 젊은 바라문 와셋타와 바라드와자에게 “어떻게 바라문이 되는가?”라는 토론이 벌어졌다. 젊은 바라문 바라드와자는 이렇게 말했다. ― “존자여,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으로부터 잘 태어난 순수한 혈통이고, 태어남에 관한 토론에서 칠대의 선조까지 멸시당하지 않고, 비난받지 않을 때, 존자여, 이만큼 바라문이 됩니다.”라고. 젊은 바라문 와셋타는 이렇게 말했다. ― “존자여, 계(戒)와 관행을 갖췄을 때, 존자여, 이만큼 바라문이 됩니다.”라고. 젊은 바라문 바라드와자는 젊은 바라문 와셋타를 설득할 수 없었고, 젊은 바라문 와셋타는 젊은 바라문 바라드와자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러자 젊은 바라문 와셋타가 젊은 바라문 바라드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바라드와자 존자여, 삭꺄의 자손이고 삭꺄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잇차낭갈라에서 잇차낭갈라 숲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그분 고따마 존자에게는 이런 좋은 명성이 퍼져있습니다. ―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밝음과 실천을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 천상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이시다.’라고. 우리가 가봅시다, 바라드와자 존자여, 사문 고따마에게 갑시다. 가서 사문 고따마에게 이 뜻을 물어봅시다. 사문 고따마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대로 명심합시다.”라고. “알겠습니다, 존자여.”라고 젊은 바라문 바라드와자는 젊은 바라문 와셋타에게 대답했다.
젊은 바라문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는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젊은 바라문 와셋타가 세존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
ahaṃ pokkharasātissa, tārukkhassāyaṃ māṇavo.
저희 둘은 삼명(三明)을 갖춘 자라고 허가받았고,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뽁카라사띠 바라문의 제자이고, 이 사람은 따룩카 바라문의 제자입니다.
padakasmā veyyākaraṇā, jappe ācariyasādisā.
tesaṃ no jātivādasmiṃ, vivādo atthi gotama.
삼명(三明)을 갖춘 자들에게 알려진 것을 단어와 설명에 의해 거기서 완전히 알았습니다.
토론에서 스승에 버금갑니다. 그런 저희에게 태어남에 관한 토론에서 다툼이 있습니다, 고따마여.
ahañca kammunā brūmi, evaṃ jānāhi cakkhuma.
눈을 가진 분이여, 이렇게 아십시오. 바라드와자는 태어남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고 말하고, 저는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고 말합니다.
bhavantaṃ puṭṭhumāgamā, sambuddhaṃ iti vissutaṃ.
저희 둘은 그것들에 대해 서로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깨달으신 분이라고 널리 알려진 존자께 여쭙기 위해 왔습니다.
vandamānā namassanti, lokasmiṃ gotamaṃ.
달의 기우는 과정이 지나면 그 후에 사람들이 합장하듯
예배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고따마를 공경합니다.
jātiyā brāhmaṇo hoti, udāhu bhavati kammunā.
ajānataṃ no pabrūhi, yathā jānemu brāhmaṇan”ti.
세상에서 눈을 가진 고따마에게 저희는 묻습니다.
태어남에 의해 바라문이 됩니까 아니면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됩니까?
바라문에 대해 알기를 바랍니다. 알지 못하는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456.
anupubbaṃ yathātathaṃ.
jātivibhaṅgaṃ pāṇānaṃ, aññamaññāhi jātiyo.
(와셋타여라고 세존이 말함) 그런 그대들에게 내가 순서대로 있는 그대로
존재들의 공통점을 가진 태어남에 대한 분석을 말하겠다.
liṅgaṃ jātimayaṃ tesaṃ, aññamaññā hi jātiyo.
풀과 나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비록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태어남에서 생기는 특징이 있다. 참으로 그들의 태어남은 공통점이 있다.
liṅgaṃ jātimayaṃ tesaṃ, aññamaññā hi jātiyo.
그다음에 나방과 메뚜기 그리고 개미에 대해서도
태어남에서 생기는 특징이 있다. 참으로 그들의 태어남은 공통점이 있다.
liṅgaṃ jātimayaṃ tesaṃ, aññamaññā hi jātiyo.
작든 크든 네발짐승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태어남에서 생기는 특징이 있다. 참으로 그들의 태어남은 공통점이 있다.
liṅgaṃ jātimayaṃ tesaṃ, aññamaññā hi jātiyo.
등이 길고 살금살금 움직이는 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태어남에서 생기는 특징이 있다. 참으로 그들의 태어남은 공통점이 있다.
liṅgaṃ jātimayaṃ tesaṃ, aññamaññā hi jātiyo.
그다음에 물에서 살아가는 어류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태어남에서 생기는 특징이 있다. 참으로 그들의 태어남은 공통점이 있다.
liṅgaṃ jātimayaṃ tesaṃ, aññamaññā hi jātiyo.
그다음에 허공을 날아다니는 날개가 있는 새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태어남에서 생기는 특징이 있다. 참으로 그들의 태어남은 공통점이 있다.
evaṃ natthi manussesu, liṅgaṃ jātimayaṃ puthu.
이런 태어남들에 있어 태어남에서 생기는 분류된 특징과 관련하여
사람들에서는 이렇게 태어남에서 생기는 분류된 특징이 없다.
• puthu: separated; individual; far and wide; separately. (ind.) ‘(4성 계급으로) 분류된’으로 해석하였음
na mukhena na nāsāya, na oṭṭhehi bhamūhi vā.
머리카락이나 머리에 의해서도 없고, 귀나 눈에 의해서도 없고
입이나 코에 의해서도 없고, 입술이나 눈썹에 의해서도 없다.
na soṇiyā na urasā, na sambādhe na methune.
목이나 어깨에 의해서도 없고, 배나 등에 의해서도 없고
궁둥이나 가슴에 의해서도 없고, 성기나 성행위에 의해서도 없고
na jaṅghāhi na ūrūhi, na vaṇṇena sarena vā.
liṅgaṃ jātimayaṃ neva, yathā aññāsu jātisu.
손이나 발에 의해서도 없고, 손가락이나 손톱에 의해서도 없고
종아리나 허벅지에도 없고, 얼굴빛이나 소리에 의해서도 없다.
다른 태어남들에서와 같은 태어남에서 생기는 특징이 없다.
457.
vokārañca manussesu, samaññāya pavuccati.
사람들의 몸에서 이런 개별적인 것은 없다.
사람들에서 구성요소(삶을 구성하는 행위 즉 직업)를 지시하여 불린다.
evaṃ vāseṭṭha jānāhi, kassako so na brāhmaṇo.
사람 가운데 소를 돌보며 사는 자는 누구든지
와셋타여, 이렇게 알아야 한다. 그는 농부이지 바라문이 아니다.
evaṃ vāseṭṭha jānāhi, sippiko so na brāhmaṇo.
사람 가운데 분류된 기술로써 사는 자는 누구든지
와셋타여, 이렇게 알아야 한다. 그는 장인이지 바라문이 아니다.
evaṃ vāseṭṭha jānāhi, vāṇijo so na brāhmaṇo.
사람 가운데 장사로써 사는 자는 누구든지
와셋타여, 이렇게 알아야 한다. 그는 상인이지 바라문이 아니다.
evaṃ vāseṭṭha jānāhi, pessako so na brāhmaṇo.
사람 가운데 남을 위한 봉사로써 사는 자는 누구든지
와셋타여, 이렇게 알아야 한다. 그는 종업원이지 바라문이 아니다.
evaṃ vāseṭṭha jānāhi, coro eso na brāhmaṇo.
사람 가운데 주어지지 않은 것으로 사는 자는 누구든지
와셋타여, 이렇게 알아야 한다. 그는 도둑이지 바라문이 아니다.
evaṃ vāseṭṭha jānāhi, yodhājīvo na brāhmaṇo.
사람 가운데 활쏘기로 사는 자는 누구든지
와셋타여, 이렇게 알아야 한다. 그는 전사이지 바라문이 아니다.
evaṃ vāseṭṭha jānāhi, yājako so na brāhmaṇo.
사람 가운데 사제의 직책으로 사는 자는 누구든지
와셋타여, 이렇게 알아야 한다. 그는 제관이지 바라문이 아니다.
evaṃ vāseṭṭha jānāhi, rājā eso na brāhmaṇo.
사람 가운데 마을과 나라를 통치하는 자는 누구든지
와셋타여, 이렇게 알아야 한다. 그는 왕이지 바라문이 아니다.
bhovādi nāma so hoti, sace hoti sakiñcano.
akiñcanaṃ anādān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 이 게송부터 459까지의 게송들은 법구경 (KN 2.26-바라문 품)에 반복됨
나는 자궁에서 생긴 바라문, 태어남에서 만들어진 바라문을 말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존자(바라문)이라는 이름이다.
아무것도 없고 집착에서 떠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고 부른다.
458.
saṅgātigaṃ visaṃyutt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모든 족쇄를 끊고서 동요하지 않는 사람
집착을 넘어서서 풀려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ukkhittapalighaṃ buddh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가죽끈, 띠, 사슬, 굴레를 끊고
빗장을 들어 올린 깨달은 자(부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khantībalaṃ balānīk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비난과 처벌과 구속을 참아내는(용서하는) 밀쳐내지 않는 사람
인내력을 갖춘 군인,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dantaṃ antimasārīr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화내지 않고, 관행을 가진, 계(戒)를 중시하고 건방지지 않은 사람
길들었고, 마지막 몸을 가진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yo na limpati kāmesu,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연잎의 물처럼, 송곳 끝의 겨자씨처럼
소유의 삶에서 얼룩지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pannabhāraṃ visaṃyutt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여기서 자신에게 괴로움이 부서진 것을 꿰뚫어 아는 사람
짐을 내려놓고 풀려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uttamatthamanuppatt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심오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사람, 길과 길 아님에 숙달된
최상의 성취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anokasārimappicch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재가자와 출가자 둘 다와 교제하지 않는 사람
집 없이 배회하고 원함이 적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yo na hanti na ghāteti,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두려워하는 자와 강한 자에 대해 몽둥이를 내려놓은 사람.
해치지 않고 죽이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sādānesu anādān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적대적인 사람들 가운데 적대적이지 않고, 자신을 해치는 사람들 가운데서 꺼진 사람
집착하는 사람들 가운데 집착에서 풀려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sāsaporiva āraggā,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송곳 끝의 겨자씨처럼, 탐(貪)과 진(嗔)과 자기화와 위선이 소멸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59.
yāya nābhisajje kiñci,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거칠지 않고 분명하며 진실된 말을 하는 사람
누구에게도 화내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loke adinnaṃ nādeti,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길건 짧건, 작든 크든, 깨끗하든 더럽든
세상에서 주어지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nirāsāsaṃ visaṃyutt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이 세상과 저세상에 갈망들이 없는 사람
갈망하지 않아 갈망에서 풀려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amatogadhaṃ anuppatt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잡는 성질들이 없고, 무위(無爲)의 앎이 생겨서 의심이 없는 사람
불사(不死)의 실현을 성취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asokaṃ virajaṃ suddh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이 세상에서 복(福)과 악(惡)의 두 가지 끈끈이를 극복한 사람
슬픔을 넘어서서 때 없고 청정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nandībhavaparikkhīṇ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때 없고 청정하고 밝고 깨끗한 달처럼
소망과 존재가 완전히 부서진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tiṇṇo pāraṅgato jhāyī, anejo akathaṃkathī.
anupādāya nibbuto,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이 위험한 길과 위험한 곳, 윤회(輪迴)와 치(癡)를 건넌 사람
건너서 저편에 닿은 선(禪)을 닦는 사람, 갈망 없고 의심 없는 사람
집착하지 않아서 꺼진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kāmabhavaparikkhīṇ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여기서 소유의 삶을 버린 뒤 집 없이 유행할 수 있는 사람
소유의 존재[욕유(慾有)]를 완전히 부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taṇhābhavaparikkhīṇ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여기서 애(愛)를 버린 뒤 집 없이 유행할 수 있는 사람
갈애[애(愛)]와 존재[유(有)]가 완전히 부서진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sabbayogavisaṃyutt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사람의 속박을 부수고 하늘의 속박을 극복한 사람
모든 속박에서 풀려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sabbalokābhibhuṃ vīr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유쾌와 불쾌를 부수어 차가워지고 집착이 없는 사람
세상을 완전히 정복한 영웅,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asattaṃ sugataṃ buddh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완전히 아는 사람
붙잡음이 없는 선서(善逝)이자 부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khīṇāsavaṃ arahant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신과 간답바와 사람들이 간 곳을 모르는 사람
번뇌 다한 아라한,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akiñcanaṃ anādān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이전에도 나중에도 중간에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
아무것도 없고 집착에서 떠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anejaṃ nhātakaṃ buddh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황소이며, 가장 뛰어난 영웅, 위대한 정복자
갈망하지 않음으로 목욕한 부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atho jātikkhayaṃ patto,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전생을 알고 천상과 지옥을 보는 사람
그래서 태어남의 부서짐을 성취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460.
sammuccā samudāgataṃ, tattha tattha pakappitaṃ.
만들어진 것인 이름과 성(姓)은 참으로 세상에서 지정된 것이다.
동의하여 생긴 것이고, 여기저기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ajānantā no pabrunti, jātiyā hoti brāhmaṇo.
오랫동안 잠재된, 치우친 견해,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우리에게 설명한다. ― ‘태어남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라고.
kammunā brāhmaṇo hoti, kammunā hoti abrāhmaṇo.
태어남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남에 의해 바라문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업(業)]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 행위에 의해 바라문 아닌 사람이 된다.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술자가 된다.
행위에 의해 상인이 되고, 행위에 의해 종업원이 된다.
yājako kammunā hoti, rājāpi hoti kammunā.
행위에 의해 도둑도 되고, 행위에 의해 전사도 된다.
행위에 의해 제관이 되고, 행위에 의해 왕도 된다.
paṭiccasamuppādadassā, kammavipākakovidā.
현명한 사람들은 이렇게 있는 그대로 행위를 본다.
연기(緣起)를 보는 자이고, 업(業)과 보(報)에 능숙하다.
kammanibandhanā sattā, rathassāṇīva yāyato.
행위에 의해 세상이 전개되고, 행위에 의해 인간이 이어진다. 중생들은 행위에 묶여있다. 마치 수레가 바퀴를 굴대에 고정하는 쐐기에 의해 나아가는 것처럼.
etena brāhmaṇo hoti, etaṃ brāhmaṇamuttamaṃ.
고행(苦行-종교적인 삶)과 범행(梵行), 자기제어와 길들임
이것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 이런 사람이 최상의 바라문이다.
evaṃ vāseṭṭha jānāhi, brahmā sakko vijānatan”ti.
와셋타여, 이렇게 알라! 삼명(三明)을 갖춘 자, 평화롭고 다음의 존재가 다한 자가
아는 자에게는 범천(梵天)이고 삭까이다.
이렇게 말했을 때, 젊은 바라문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런 저희는 의지처인 고따마 존자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희를 오늘부터 살아있는 동안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라고.
vāseṭṭhasuttaṃ niṭṭhitaṃ aṭṭhamaṃ. 여덟 번째 와셋타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