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āmagāmasuttaṃ (MN 104-사마가마 경)
1. devadahavaggo, 4. sāmagāmasuttaṃ (MN 104-사마가마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은 삭까에서 사마가마에 머물렀는데, 니간타 나따뿟다가 빠와에서 죽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가 죽자 분열된 니간타들은 둘로 갈라져서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에 입의 칼로 찌르며 머물렀다. — ‘그대는 이 법(法)과 율(律)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그대가 이 법과 율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대는 잘못 실천하는 자이고 나는 바르게 실천하는 자이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다.’, ‘그대는 앞에 말해야 하는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하는 것을 앞에 말한다.’, ‘그대가 성취한 것은 파기되었다.’, ‘그대가 준비한 말은 비난되었다. 말을 취소하라. 아니면 할 수 있다면 설명해 보라.’라고.
생각건대,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는 오직 처벌만이 있는 듯하였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들도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 싫증 내는 모습이었고 불쾌해하는[좋아하지 않는, 싫어하는, 바랜] 모습이었고 배척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법(法)과 율(律)이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구원으로 이끌지 않고 가라앉음으로 이끌지 않고 바르게 깨달은 자[정등각(正等覺)]에 의해 선언되지 않고 탑이 부서지고 귀의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때, 빠와에서 안거를 마친 초심자 쭌다가 사마가마에 와서, 아난다 존자에게 왔다. 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초심자 쭌다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니간타 나따뿟다가 빠와에서 죽고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자 분열된 니간타들은 둘로 갈라져서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에 입의 칼로 찌르며 머물렀습니다. — ‘그대는 이 법(法)과 율(律)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그대가 이 법과 율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대는 잘못 실천하는 자이고 나는 바르게 실천하는 자이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다.’, ‘그대는 앞에 말해야 하는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하는 것을 앞에 말한다.’, ‘그대가 성취한 것은 파기되었다.’, ‘그대가 준비한 말은 비난되었다. 말을 취소하라. 아니면 할 수 있다면 설명해 보라.’라고. 생각건대,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는 오직 처벌만이 있는 듯하였습니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들도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들에게 싫증 내는 모습이었고 관심이 떨어진 모습이었고 배척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법(法)과 율(律)이 잘못 설해지고 잘못 선언되고 구원으로 이끌지 않고 가라앉음으로 이끌지 않고 바르게 깨달은 자[정등각(正等覺)]에 의해 선언되지 않고 탑이 부서지고 귀의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아난다 존자는 초심자 쭌다에게 “도반 쭌다여, 이것은 세존께서 아셔야 하는 주제입니다. 갑시다, 도반 쭌다여. 세존에게 가서 이 의미를 세존에게 알려드립시다.”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초심자 쭌다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와 초심자 쭌다는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이 초심자 쭌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대덕이시여, 니간타 나따뿟다가 빠와에서 죽은 뒤의 무렵이었습니다. 그가 죽자 분열된 니간타들은 둘로 갈라져서 … 탑이 부서지고 귀의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런 저에게, 대덕이시여,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세존께서 돌아가신 뒤에 상가에 갈등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그 갈등은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위한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실다운 지혜에 의해 내가 그대들에게 설한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의 법(法)들에서, 아난다여, 그대는 다른 말을 하는 비구를 두 명이라도 보는가?”
“대덕이시여, 실다운 지혜에 의해 세존께서 저에게 설한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의 법(法)들에서 저는 다른 말을 하는 비구를 두 명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덕이시여, 세존을 우러르며 머무는 사람들도 세존의 죽음 이후에는 상가에서 생활에 관계되거나 계목(戒目)에 관계되어 갈등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그 갈등은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위한 것입니다.”
“아난다여, 생활에 관계되거나 계목(戒目)에 관계된 갈등은 사소한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나 상가에 도(道)나 실천에 관한 갈등이 일어난다면, 그 갈등은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위한 것이다.
아난다여, 이런 여섯 가지 갈등의 뿌리가 있다. 어떤 여섯인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는 성내고 원한을 가진 자다. 아난다여, 성내고 원한을 가진 그 비구는 스승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법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상가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공부에 대해서도 성취하지 못한다.
스승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법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상가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공부에 대해서도 성취하지 못한 그는 상가에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위한 것인 갈등을 생겨나게 한다.
아난다여, 만약 그대들에게 이러한 갈등의 뿌리가 안이나 밖에서 관찰된다면, 그때, 아난다여, 그 악한 갈등의 뿌리를 버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그대들에게 이러한 갈등의 뿌리가 안이나 밖에서 관찰되지 않는다면, 그때, 아난다여, 그 악한 갈등의 뿌리가 미래에 흘러나오지 않도록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이 악한 갈등의 뿌리가 버려지고, 이렇게 이 이 악한 갈등의 뿌리가 미래에 흘러나오지 않는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위선적이고 악의를 가진 자다 … 질투하고 인색한 자다 … 교활하고 사기 치는 자다 … 악한 원함과 삿된 견해를 가진 자다 … 세속적인 것에 오염되고, 고치기 힘들고, 놓기 어려운 자다. 세속적인 것에 오염되고, 고치기 힘들고, 놓기 어려운 그 비구는 그 비구는 스승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법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상가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문다. 공부에 대해서도 성취하지 못한다.
스승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법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상가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유순하지 않게 머물고, 공부에 대해서도 성취하지 못한 그는 상가에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과 인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위한 것인 갈등을 생겨나게 한다.
아난다여, 만약 그대들에게 이러한 갈등의 뿌리가 안이나 밖에서 관찰된다면, 그때, 아난다여, 그 악한 갈등의 뿌리를 버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아난다여, 만약 그대들에게 이러한 갈등의 뿌리가 안이나 밖에서 관찰되지 않는다면, 그때, 아난다여, 그 악한 갈등의 뿌리가 미래에 흘러나오지 않도록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이 악한 갈등의 뿌리가 버려지고, 이렇게 이 이 악한 갈등의 뿌리가 미래에 흘러나오지 않는다. 아난다여, 이런 여섯 가지 갈등의 뿌리가 있다.
아난다여, 이런 네 가지 사건이 있다. 어떤 넷인가? 논쟁으로 인한 분쟁(vivādādhikaraṇaṃ : 論諍事), 고발로 인한 분쟁(anuvādādhikaraṇaṃ : 非難事), 범죄로 인한 분쟁(āpattādhikaraṇaṃ : 罪諍事), 절차로 인한 분쟁(kiccādhikaraṇaṃ : 行諍事) — 아난다여, 이런 네 가지 사건이 있다. 또한, 아난다여, 이런 일곱 가지 사건의 그침이 있다. — 거듭 생기는 사건들의 그침과 가라앉음을 위해 현전비나야(現前毘奈耶)[대면하여 다스림]를 행함, 억념비나야(憶念毘奈耶)[기억을 환기시켜 다스림]를 행함, 불치비나야(不痴毘奈耶)[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선고]를 행함, 자인(自認)을 행함, 다인어(多人語)[다수결에 의함]를 행함, 멱죄상(覓罪相)[더 심문하여 자인케 함]을 행함, 여초복지법(如草覆地法)[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을 행함이다.
아난다여, 어떻게 현전비나야(現前毘奈耶)[대면하여 다스림]가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들은 법이라거나 법이 아니라거나 율이라거나 율이 아니라며 갈등한다. 아난다여, 거기에 속한 비구들이 모두 함께해야 한다. 함께 모여서 법이 이끄는 대로 함께 논의해야 한다. 법이 이끄는 대로 논의한 뒤에 거기서 합의한 방법으로 그 사건을 가라앉혀야 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현전비나야(現前毘奈耶)[대면하여 다스림]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현전비나야(現前毘奈耶)[대면하여 다스림]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아난다여, 어떻게 다인어(多人語)[다수결에 의함](*)이 있는가? 만약, 아난다여, 그 비구들이 그 거처에서 그 사건을 가라앉히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아난다여, 그 비구들은 더 많은 비구가 있는 거처로 가야 한다. 거기에서 모두 함께해야 한다. 함께 모여서 법이 이끄는 대로 논의해야 한다. 법이 이끄는 대로 논의한 뒤에 거기서 합의한 방법으로 그 사건을 가라앉혀야 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다인어(多人語)[다수결에 의함]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인어(多人語)[다수결에 의함]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 다수결(多數決) 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구함’의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임.
아난다여, 어떻게 억념비나야(憶念毘奈耶)[기억을 환기시켜 다스림]가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들이 ‘존자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어떤 비구를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에 대해 질책한다. 그는 ‘도반들이여, 나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아난다여, 그 비구에게 억념비나야(憶念毘奈耶)[기억을 환기시켜 다스림]를 행해야 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억념비나야(憶念毘奈耶)[기억을 환기시켜 다스림]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억념비나야(憶念毘奈耶)[기억을 환기시켜 다스림]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아난다여, 어떻게 불치비나야(不痴毘奈耶)[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선고]가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들이 ‘존자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어떤 비구를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에 대해 질책한다. (그는 ‘도반들이여, 나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오시오, 존자여, 그대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라고 그것에 대해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도반들이여, 나는 정신이상 상태여서 심(心)이 전도되었습니다. 그런 정신이상 상태의 내가 사문답지 못한 말과 행동을 많이 행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는 모르고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난다여, 그 비구에게 불치비나야(不痴毘奈耶)[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선고]가 행해져야 한다. 이렇게, 아난다여, 불치비나야(不痴毘奈耶)[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선고]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불치비나야(不痴毘奈耶)[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선고]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아난다여, 어떻게 자인(自認)이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질책받거나 질책받지 않은 비구가 잘못을 범한 것을 기억하고, 알리고, 분명히 한다. 아난다여, 그 비구보다 연장자인 비구에게 가서 윗옷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발에 예배하고, 쪼그려 앉아서 합장한 뒤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대덕이시여, 저는 이러저러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을 자백합니다.’라고. 그는 ‘보았습니까?’라고 말한다. ‘예,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단속하겠습니까?’ (‘단속하겠습니다.’) 이렇게, 아난다여, 자인(自認)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인(自認)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아난다여, 어떻게 멱죄상(覓罪相)[더 심문하여 자인케 함]이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가 ‘존자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어떤 비구를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에 대해 질책한다. 그는 ‘도반이여, 나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오시오, 존자여, 그대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준하는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라고 그것에 대해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도반이여, 나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소한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오시오, 존자여, 그대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라고 그것에 대해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도반이여, 나는 이런 사소한 계(戒)를 범한 뒤에 질문받지 않은 것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뒤에 질문받은 것을 인정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도반이여, 그대는 이런 사소한 계(戒)를 범한 뒤에 질문받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가 어떻게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뒤에 질문받은 것을{질문받지 않은 것을} 인정하겠습니까? 오시오, 존자여, 그대는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도반이여,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나는 기억합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감당할 수 없어서 ‘빠라지까거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이런 무거운 계(戒)를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라고. 이렇게, 아난다여, 멱죄상(覓罪相)[더 심문하여 자인케 함]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멱죄상(覓罪相)[더 심문하여 자인케 함]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아난다여, 어떻게 여초복지법(如草覆地法)[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이 있는가? 여기, 아난다여, 분쟁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갈등하며 머무는 비구들이 사문답지 못한 말과 행동을 많이 행한다. 아난다여, 거기에 속한 그 비구들이 모두 함께해야 한다. 함께 모인 뒤에 한쪽 편의 비구들 가운데 경험이 있는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쪼그려 앉아서 합장한 뒤 상가에게 설명해야 한다. —
‘대덕이시여, 상가는 나의 말을 들으십시오. 분쟁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갈등하며 머무는 우리는 사문답지 못한 말과 행동을 많이 행했습니다. 만일 상가가 허락한다면, 나는 이 존자들을 위하고 나 자신을 위해 이 존자들이 계(戒)를 범한 것과 나 자신이 계(戒)를 범한 것을, 중대한 결점과 재가자에 관계된 것은 제외하고, 상가 가운데 여초복지법(如草覆地法)[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에 의해 tjfry할 것입니다.’라고.
그러면 다른 한쪽 편의 비구들 가운데 경험이 있는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쪼그려 앉아서 합장한 뒤 상가에게 설명해야 한다. —
‘대덕이시여, 상가는 나의 말을 들으십시오. 분쟁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갈등하며 머무는 우리들은 사문답지 못한 말과 행동을 많이 행했습니다. 만일 상가가 허락한다면, 나는 이 존자들을 위하고 나 자신을 위해 이 존자들이 계(戒)를 범한 것과 나 자신이 계(戒)를 범한 것을, 중대한 결점과 재가자에 관계된 것은 제외하고, 상가 가운데 여초복지법(如草覆地法)[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에 의해 설교할 것입니다.’라고.
이렇게, 아난다여, 여초복지법(如草覆地法)[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여초복지법(如草覆地法)[대표자의 인정으로 잘못을 풀로 덮어두는 방식]에 의한 어떤 사건의 가라앉음이 있다.
아난다여, 이런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하는 법들은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들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끈다. 어떤 여섯인가? 여기, 아난다여, 비구가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에 대해서 자(慈)와 함께하는 신업(身業)을 행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들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가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에 대해서 자(慈)와 함께하는 구업(口業)을 행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들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가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에 대해서 자(慈)와 함께하는 의업(意業)을 행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들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가 적절하고 정당하고 법답게 얻은 것들은 그것이 비록 나누어 사용하지 못할 만큼 얻어진 발우에 담긴 적은 것일지라도 계(戒)를 중시하는 동료수행자들과 공동으로 사용한다. 이것도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들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가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구속되지 않고, 지자들이 칭찬하고,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그런 계들을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갖추어 머문다. 이것도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들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가 성스럽고 구원으로 이끌고 그대로 실천하면 괴로움의 부숨으로 이끄는 견해에 대해서,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그런 견해를 갖추어 머문다. 이것도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들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기억 해야 하는 법이다.
만약, 아난다여, 그대들이 이런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하는 법들을 받아들여서 실천하는데도, 아난다여, 그대들은 작든 크든 그대들이 동의할 수 없는 말의 길을 보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런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하는 법들을 받아들여서 실천하라. 그것은 그대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