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upadasuttaṃ(MN 111-순서대로 경)
2. anupadavaggo, 1. anupadasuttaṃ (MN 111-순서대로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거기서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현자(賢者)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큰 지혜를 가졌다. 사리뿟따는 분석적인 지혜를 가졌다. 사리뿟따는 환희하는 지혜를 가졌다. 사리뿟따는 민활한 지혜를 가졌다. 사리뿟따는 예리한 지혜를 가졌다. 사리뿟따는 꿰뚫는 지혜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보름 동안 법의 위빳사나를 순서대로 진행했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사리뿟따가 순서대로 진행한 법의 위빳사나는 이것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사리뿟따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리고 초선에는 위딱까와 위짜라와 희열과 행복과 심일경성(心一境性)-촉(觸)-수(受)-상(想)-사(思)-심(心)-관심-결정-노력-사띠-평정-작의의 법들이 있다. 이 법들은 순서대로 분석되었다. 이 법들은 보이는 것이 생기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 ‘이렇게 이 법들은 없었다가 생겨나고, 있었다가 사라진다.’라고. 그는 그 법들에 대해 접근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해방되고 속박에서 벗어나고 제한되지 않은 심(心)으로 머문다. 그는 ‘더 높은 해방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것을 많이 행함으로 인해 분명히 있게 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2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리고 제2선에는 내적인 평온과 희열과 행복과 심일경성-촉-수-상-사-심-관심-결정-노력-사띠-평정-작의의 법들이 있다. 이 법들은 순서대로 분석되었다. 이 법들은 보이는 것이 생기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 ‘이렇게 이 법들은 없었다가 생겨나고, 있었다가 사라진다.’라고. 그는 그 법들에 대해 접근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해방되고 족쇄를 벗고 제한되지 않은 심으로 머문다. 그는 ‘더 높은 해방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것을 많이 행함으로 인해 분명히 있게 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라고 말하는 제3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리고 제3선에는 행복과 사띠와 바른 앎과 심일경성-촉-수-상-사-심-관심-결정-노력-사띠-평정-작의의 법들이 있다. 이 법들은 순서대로 분석되었다. 이 법들은 보이는 것이 생기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 ‘이렇게 이 법들은 없었다가 생겨나고, 있었다가 사라진다.’라고. 그는 그 법들에 대해 접근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해방되고 족쇄를 벗고 제한되지 않은 심으로 머문다. 그는 ‘더 높은 해방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것을 많이 행함으로 인해 분명히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의 제4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리고 제4선에는 평정-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진정-심이 관념화하지 않음-사띠의 청정과 심일경성-촉-수-상-사-심-관심-결정-노력-사띠-평정-작의의 법들이 있다. 이 법들은 순서대로 분석되었다. 이 법들은 보이는 것이 생기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 ‘이렇게 이 법들은 없었다가 생겨나고, 있었다가 사라진다.’라고. 그는 그 법들에 대해 접근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해방되고 족쇄를 벗고 제한되지 않은 심으로 머문다. 그는 ‘더 높은 해방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것을 많이 행함으로 인해 분명히 있게 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완전하게 색상(色想)을 넘어서고, 저항의 상이 줄어들고, 다양한 상을 작의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리고 공무변처에는 공무변처의 상과 심일경성-촉-수-상-사-심-관심-결정-노력-사띠-평정-작의의 법들이 있다. 이 법들은 순서대로 분석되었다. 이 법들은 보이는 것이 생기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 ‘이렇게 이 법들은 없었다가 생겨나고, 있었다가 사라진다.’라고. 그는 그 법들에 대해 접근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해방되고 족쇄를 벗고 제한되지 않은 심으로 머문다. 그는 ‘더 높은 해방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것을 많이 행함으로 인해 분명히 있게 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리고 식무변처에는 식무변처의 상(想)과 심일경성-촉-수-상-사-심-관심-결정-노력-사띠-평정-작의의 법들이 있다. 이 법들은 순서대로 분석되었다. 이 법들은 보이는 것이 생기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 ‘이렇게 이 법들은 없었다가 생겨나고, 있었다가 사라진다.’라고. 그는 그 법들에 대해 접근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해방되고 족쇄를 벗고 제한되지 않은 심으로 머문다. 그는 ‘더 높은 해방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것을 많이 행함으로 인해 분명히 있게 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그리고 무소유처에는 무소유처의 상과 심일경성-촉-수-상-사-심-관심-결정-노력-사띠-평정-작의의 법들이 있다. 이 법들은 순서대로 분석되었다. 이 법들은 보이는 것이 생기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 ‘이렇게 이 법들은 없었다가 생겨나고, 있었다가 사라진다.’라고. 그는 그 법들에 대해 접근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해방되고 족쇄를 벗고 제한되지 않은 심으로 머문다. 그는 ‘더 높은 해방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것을 많이 행함으로 인해 분명히 있게 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비상비비상처를 성취하여 머문다. 사띠를 가진 그는 그 증득에서 일어난다. 사띠를 가진 그는 그 증득에서 일어난 뒤에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그 법들을 관찰한다. - ‘이렇게 이 법들은 없었다가 생겨나고, 있었다가 사라진다.’라고. 그는 그 법들에 대해 접근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해방되고 족쇄를 벗고 제한되지 않은 심으로 머문다. 그는 ‘더 높은 해방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것을 많이 행함으로 인해 분명히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상수멸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리고 지혜로써 보아 번뇌가 다한다. 사띠를 가진 그는 그 증득에서 일어난다. 사띠를 가진 그는 그 증득에서 일어난 뒤에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그 법들을 관찰한다. - ‘이렇게 이 법들은 없었다가 생겨나고, 있었다가 사라진다.’라고. 그는 그 법들에 대해 접근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묶이지 않고 해방되고 족쇄를 벗고 제한되지 않은 심으로 머문다. 그는 ‘더 높은 해방은 없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것을 많이 행함으로 인해 분명히 없게 된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계(戒)에서 힘을 얻고 완성을 얻었으며, 성스러운 삼매에서 힘을 얻고 완성을 얻었으며, 성스러운 지혜에서 힘을 얻고 완성을 얻었으며, 성스러운 해탈에서 힘을 얻고 완성을 얻은 자’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바르게 말하는 자는 사리뿟따를 그렇게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세존의 법다운 아들이고, 입에서 태어났고, 법에서 생겨났고, 법에서 창조되었고, 법의 후계자이지 재물의 후계자가 아닌 자’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바르게 말하는 자는 사리뿟따를 그렇게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여래가 굴린 위없는 법륜(法輪)을 바르게 계속 굴러가게 한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