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mālukyaputtasuttaṃ (SN 35.95-말루꺄뿟따 경)[SN 35.78]
10. saḷavaggo, 2. mālukyaputtasuttaṃ (SN 35.95-말루꺄뿟따 경)[SN 35.78]
말루꺄뿟따 존자가 세존에게 왔다. … 한 곁에 앉은 말루꺄뿟따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세존의 법을 들은 뒤에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로써 머물겠습니다.”라고.
“비구여, 늙고 연로하고 노쇠하고, 수명의 절반을 지나 노년에 이른 그대가 간략한 가르침을 요청한다면, 말루꺄뿟따여, 이제 젊은 비구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말하겠는가!”
“비록 제가 늙고 연로하고 노쇠하고, 수명의 절반을 지나 노년에 이르렀다 해도,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주십시오. 선서께서는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주십시오. 참으로 저는 세존의 말씀의 의미를 알 것입니다. 참으로 저는 세존의 말씀의 후계자가 될 것입니다.”
“말루꺄뿟따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에게 보이지 않고, 예전에 보이지 않았고, 그대가 보지 않고 그대에게 보일 가능성이 없는 안(眼)으로 인식되는 색(色)들에 대해 그대에게 관심과 탐(貪)과 사랑이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대에게 들리지 않고, 예전에 들리지 않았고, 그대가 듣지 않고 그대에게 들릴 가능성이 없는 이(耳)로 인식되는 성(聲)들에 대해 그대에게 관심과 탐(貪)과 사랑이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대에게 맡아지지 않고, 예전에 맡아지지 않았고, 그대가 맡지 않고 그대에게 맡아질 가능성이 없는 비(鼻)로 인식되는 향(香)들에 대해 그대에게 관심과 탐(貪)과 사랑이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대에게 맛보이지 않고, 예전에 맛보이지 않았고, 그대가 맛보지 않고 그대에게 맛보일 가능성이 없는 설(舌)로 인식되는 미(味)들에 대해 그대에게 관심과 탐(貪)과 사랑이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대에게 닿지 않고, 예전에 닿지 않았고, 그대가 닿지 않고 그대에게 닿을 가능성이 없는 신(身)으로 인식되는 촉(觸)들에 대해 그대에게 관심과 탐(貪)과 사랑이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대에게 인식되지 않고, 예전에 인식되지 않았고, 그대가 인식하지 않고 그대에게 인식될 가능성이 없는 의(意)로 인식되는 법(法)들에 대해 그대에게 관심과 탐(貪)과 사랑이 있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여기서,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보이고 들리고 닿아 알고 인식되어야 하는 법들에서 보일 때는 단지 보임만이 있을 것이고, 들릴 때는 단지 들림만이 있을 것이고, 닿아 알 때는 단지 닿아 앎만이 있을 것이고, 인식될 때는 단지 인식됨만이 있을 것이다.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보이고 들리고 닿아 알고 인식되어야 하는 법들에서 보일 때는 단지 보임만이 있고, 들릴 때는 단지 들림만이 있고, 닿아 알 때는 단지 닿아 앎만이 있고, 인식될 때는 단지 인식됨만이 있을 때,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그것에 의해’가 없을 것이다.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그것에 의해’가 없을 때,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거기에’가 없다. 말루까뿟따여, 그대에게 ‘거기에’가 없을 때,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이 세상도 없고 저세상도 없고 둘의 중간도 없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에 의해 간략하게 설해진 이 말씀의 상세한 뜻을 압니다. ―
“rūpaṃ dis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rūpasambhavā.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사랑스러운 상(相)을 작의(作意) 하는 자는 색(色)을 보면서 사띠를 잊습니다.
친밀한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뭅니다.
그에게 색(色)에서 생긴 여러 가지 느낌들이 늘어납니다.
간탐과 짜증이 심(心)을 해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멉니다.
“saddaṃ sut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saddasambhavā.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사랑스러운 상(相)을 작의(作意) 하는 자는 성(聲)을 들으면서 사띠를 잊습니다.
친밀한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뭅니다.
그에게 성(聲)에서 생긴 여러 가지 느낌들이 늘어납니다.
간탐과 짜증이 심(心)을 해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멉니다.
“gandhaṃ ghat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gandhasambhavā.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사랑스러운 상(相)을 작의(作意) 하는 자는 향(香)을 맡으면서 사띠를 잊습니다.
친밀한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뭅니다.
그에게 향(香)에서 생긴 여러 가지 느낌들이 늘어납니다.
간탐과 짜증이 심(心)을 해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멉니다.
“rasaṃ bhot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rasasambhavā.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사랑스러운 상(相)을 작의(作意) 하는 자는 미(味)를 맛보면서 사띠를 잊습니다.
친밀한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뭅니다.
그에게 미(味)에서 생긴 여러 가지 느낌들이 늘어납니다.
간탐과 짜증이 심(心)을 해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멉니다.
“phassaṃ phussa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phassasambhavā.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사랑스러운 상(相)을 작의(作意) 하는 자는 촉(觸)을 닿으면서 사띠를 잊습니다.
친밀한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뭅니다.
그에게 촉(觸)에서 생긴 여러 가지 느낌들이 늘어납니다.
간탐과 짜증이 심(心)을 해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멉니다.
“dhammaṃ ñat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dhammasambhavā.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사랑스러운 상(相)을 작의(作意) 하는 자는 법(法)을 인식하면서 사띠를 잊습니다.
친밀한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뭅니다.
그에게 법(法)에서 생긴 여러 가지 느낌들이 늘어납니다.
간탐과 짜증이 심(心)을 해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멉니다.
“na so rajjati rūpesu, rūpaṃ disvā paṭissato.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yathāssa passato rūpaṃ, sevato cāpi vedanaṃ.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색(色)을 보면서 빈틈없이 사띠하는 자는 색(色)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탐(離貪) 하는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물지 않습니다.
그처럼 색(色)을 보는 자 그리고 느낌을 경험하는 자는
허물고, 쌓지 않습니다. 사띠하는 그는 이렇게 실천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허무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가깝습니다.
“na so rajjati saddesu, saddaṃ sutvā paṭissato.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yathāssa suṇato saddaṃ, sevato cāpi vedanaṃ.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성(聲)을 들으면서 빈틈없이 사띠하는 자는 성(聲)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탐(離貪) 하는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물지 않습니다.
그처럼 성(聲)을 듣는 자 그리고 느낌을 경험하는 자는
허물고, 쌓지 않습니다. 사띠하는 그는 이렇게 실천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허무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가깝습니다.
“na so rajjati gandhesu, gandhaṃ ghatvā paṭissato.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yathāssa ghāyato gandhaṃ, sevato cāpi vedanaṃ.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향(香)을 맡으면서 빈틈없이 사띠하는 자는 향(香)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탐(離貪) 하는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물지 않습니다.
그처럼 향(香)을 맡는 자 그리고 느낌을 경험하는 자는
허물고, 쌓지 않습니다. 사띠하는 그는 이렇게 실천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허무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가깝습니다.
“na so rajjati rasesu, rasaṃ bhotvā paṭissato.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yathāssa sāyato rasaṃ, sevato cāpi vedanaṃ.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미(味)를 맛보면서 빈틈없이 사띠하는 자는 미(味)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탐(離貪) 하는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물지 않습니다.
그처럼 미(味)를 맛본 자 그리고 느낌을 경험하는 자는
허물고, 쌓지 않습니다. 사띠하는 그는 이렇게 실천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허무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가깝습니다.
“na so rajjati phassesu, phassaṃ phussa paṭissato.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yathāssa phusato phassaṃ, sevato cāpi vedanaṃ.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촉(觸)을 닿으면서 빈틈없이 사띠하는 자는 촉(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탐(離貪) 하는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물지 않습니다.
그처럼 촉(觸)을 닿는 자 그리고 느낌을 경험하는 자는
허물고, 쌓지 않습니다. 사띠하는 그는 이렇게 실천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허무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가깝습니다.
“na so rajjati dhammesu, dhammaṃ ñatvā paṭissato.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yathāssa jānato dhammaṃ, sevato cāpi vedanaṃ.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ī”ti.
법(法)을 인식하면서 빈틈없이 사띠하는 자는 법(法)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탐(離貪) 하는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물지 않습니다.
그처럼 법(法)을 인식하는 자 그리고 느낌을 경험하는 자는
허물고, 쌓지 않습니다. 사띠하는 그는 이렇게 실천합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허무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가깝습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에 의해 간략하게 설해진 이 말씀의 상세한 뜻을 이렇게 압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말루꺄뿟따여! 말루꺄뿟따여, 그대는 내가 간략하게 설한 이 말의 상세한 뜻을 잘 알았다. ―
“rūpaṃ dis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rūpasambhavā.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 pe .....
사랑스러운 상(相)을 작의(作意) 하는 자는 색(色)을 보면서 사띠를 잊는다.
친밀한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문다.
그에게 색(色)에서 생긴 여러 가지 느낌들이 늘어난다.
간탐과 짜증이 심(心)을 해친다.
이렇게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멀다. …
“na so rajjati dhammesu, dhammaṃ ñatvā paṭissato.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yathāssa vijānato dhammaṃ, sevato cāpi vedanaṃ.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ī”ti.
법(法)을 인식하면서 빈틈없이 사띠하는 자는 법(法)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탐(離貪) 하는 심(心)을 가진 자는 경험하고, 그것에게 묶여 머물지 않는다.
그처럼 법(法)을 인식하는 자 그리고 느낌을 경험하는 자는
허물고, 쌓지 않는다. 사띠하는 그는 이렇게 실천한다.
이렇게 괴로움을 허무는 자에게 열반으로 해탈됨은 가깝다.
“말루꺄뿟따여, 내가 간략하게 설한 이 말의 상세한 뜻은 이렇게 보아야 한다.”
그러자 말루꺄뿟따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돌아갔다. 그리고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로써 머문 말루꺄뿟따 존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목적인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실답게 알았다. 말루꺄뿟따 존자는 아라한들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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