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koṭṭhikasuttaṃ (SN 35.232-꼿티까 경)[SN 35.185]
18. samuddavaggo, 5. koṭṭhikasuttaṃ (SN 35.232-꼿티까 경)[SN 35.185]
한때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티까 존자가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물렀다. 그때 저녁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난 마하꼿티까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까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 사리뿟따여, 안(眼)이 색(色)들에게 족쇄입니까, 색(色)들이 안(眼)에게 족쇄입니까 … 설(舌)이 미(味)들에게 족쇄입니까, 미(味)들이 설(舌)에게 족쇄입니까 … 의(意)가 법(法)들에게 족쇄입니까, 법(法)들이 의(意)에게 족쇄입니까?”
“도반 꼿티까여, 안(眼)이 색(色)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색(色)들이 안(眼)에게 족쇄가 아닙니다.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입니다. … 설(舌)이 미(味)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미(味)들이 색(色)에게 족쇄가 아닙니다.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입니다. … 의(意)가 법(法)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법(法)들이 의(意)에게 족쇄가 아닙니다.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입니다.
예를 들면, 도반이여, 검은 황소와 흰 황소가 하나의 줄이나 매듭에 의해 묶여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검은 황소는 흰 황소의 족쇄고, 흰 황소는 검은 황소의 족쇄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말하고 있는 그 사람은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검은 황소는 흰 황소의 족쇄가 아니고, 흰 황소는 검은 황소의 족쇄가 아닙니다. 하나의 줄이나 매듭에 의한 묶임 그것이 거기서 족쇄입니다.
이처럼, 도반이여, 안(眼)이 색(色)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색(色)들이 안(眼)에게 족쇄가 아닙니다.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입니다. … 설(舌)이 미(味)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 의(意)가 법(法)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법(法)들이 의(意)에게 족쇄가 아닙니다.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입니다.
도반이여, 안(眼)이 색(色)들에게 족쇄이고, 색(色)들이 안(眼)에게 족쇄였다면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한 범행(梵行)의 실천이 바르게 선언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반이여, 안(眼)이 색(色)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색(色)들이 안(眼)에게 족쇄가 아니며,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이기 때문에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한 범행(梵行)의 실천이 바르게 선언됩니다. …
도반이여, 설(舌)이 미(味)들에게 족쇄이고, 미(味)들이 설(舌)에게 족쇄였다면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한 범행(梵行)의 실천이 바르게 선언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반이여, 설(舌)이 미(味)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미(味)들이 설(舌)에게 족쇄가 아니며,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이기 때문에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한 범행(梵行)의 실천이 바르게 선언됩니다. …
도반이여, 의(意)가 법(法)들에게 족쇄이고, 법(法)들이 의(意)에게 족쇄였다면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한 범행(梵行)의 실천이 바르게 선언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반이여, 의(意)가 법(法)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법(法)들이 의(意)에게 족쇄가 아니며,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이기 때문에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한 범행(梵行)의 실천이 바르게 선언됩니다.
도반이여, 안(眼)이 색(色)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색(色)들이 안(眼)에게 족쇄가 아니며,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라는 것에 대해 … 설(舌)이 미(味)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 의(意)가 법(法)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법(法)들이 의(意)에게 족쇄가 아니며,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라는 것에 대해 이런 방법에 의해 알려져야 합니다.
도반이여, 세존에게 안(眼)이 있습니다. 세존은 안(眼)으로 색(色)을 봅니다. 욕탐(欲貪)은 세존에게 없습니다. 세존은 잘 해탈된 심(心)을 가진 분입니다. 도반이여, 세존에게 이(耳)가 있습니다. 세존은 이(耳)로 성(聲)을 듣습니다. 욕탐(欲貪)은 세존에게 없습니다. 세존은 잘 해탈된 심(心)을 가진 분입니다. 도반이여, 세존에게 비(鼻)가 있습니다. 세존은 비(鼻)로 향(香)을 맡습니다. 욕탐(欲貪)은 세존에게 없습니다. 세존은 잘 해탈된 심(心)을 가진 분입니다. 도반이여, 세존에게 설(舌)이 있습니다. 세존은 설(舌)로 미(味)를 맛봅니다. 욕탐(欲貪)은 세존에게 없습니다. 세존은 잘 해탈된 심(心)을 가진 분입니다. 도반이여, 세존에게 신(身)이 있습니다. 세존은 신(身)으로 촉(觸)을 느낍니다. 욕탐(欲貪)은 세존에게 없습니다. 세존은 잘 해탈된 심(心)을 가진 분입니다. 도반이여, 세존에게 의(意)가 있습니다. 세존은 의(意)로 법(法)을 인식합니다. 욕탐(欲貪)은 세존에게 없습니다. 세존은 잘 해탈된 심(心)을 가진 분입니다.
도반이여, 안(眼)이 색(色)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색(色)들이 안(眼)에게 족쇄가 아니며,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라는 것에 대해 … 이(耳)가 성(聲)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 비(鼻)가 향(香)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 설(舌)이 미(味)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미(味)들이 설(舌)에게 족쇄가 아니며,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라는 것에 대해 … 신(身)이 촉(觸)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 의(意)가 법(法)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법(法)들이 의(意)에게 족쇄가 아니며,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라는 것에 대해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