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saṅgāravasuttaṃ (AN 3.61-상가라와 경)
1. brāhmaṇavaggo, 10. saṅgāravasuttaṃ (AN 3.61-상가라와 경)
그때 상가라와 바라문이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상가라와 바라문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여, 우리 바라문들은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지내게 하기도 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거기서 지내는 것과 지내게 하는 것은 모두 많은 사람에 대한 공덕의 실천을 실천하는 것이니 곧 제사(祭祀)로 인한 것입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나 어떤 또는 그 가문의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는 자기 하나만을 길들이고, 자기 하나만을 가라앉히고, 자기 하나만을 완전히 꺼지게 합니다. 이렇게 이것은 한 사람에 대한 공덕의 실천을 실천하는 것이니 곧 출가로 인한 것입니다.”라고.
“바라문이여, 그것 때문에 여기서 나는 그것을 되물을 것입니다. 그대에게 좋아 보이는 대로 그것을 설명하십시오. 바라문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기 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佛)-세존(世尊)인 여래(如來)가 세상에 출현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그대들은 오라! 이런 길이 있고 이런 실천이 있다. 이런 방법으로 실천한 나는 위없는 범행(梵行)에 속한 것을 스스로 실다운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선언한다. 오라! 그대들도 그와 같이 실천하라. 그와 같은 방법으로 실천한 그대들도 위없는 범행(梵行)에 속한 것을 스스로 실다운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이렇게 이 스승은 법을 설하고 다른 사람들은 진실을 얻기 위해 실천한다. 그리고 그들은 수백, 수천, 수십만 명이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렇게 이것이 이렇게 있을 때, 출가로 인한 이것은 한 사람을 위한 공덕의 실천입니까. 또는 많은 사람을 위한 공덕의 실천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이렇게 이것이 이렇게 있을 때, 출가로 인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한 공덕의 실천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아난다 존자가 상가라와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 “바라문이여, 그대는 이 두 가지 실천 중에 어떤 실천이 옳다고 봅니까? 필요로 하는 것도 더 적고, 하는 일도 더 적지만 더 많은 결실과 더 많은 이익이 있습니까?” 이렇게 말했을 때, 상가라와 바라문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말하자면 고따마 존자와 아난다 존자처럼, 이것들은 나에게 훌륭하고 칭찬할만합니다.”
두 번째도 아난다 존자는 상가라와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 “바라문이여, 나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 ‘어떤 것들이 그대에게 훌륭합니까? 또는 어떤 것들이 그대에게 칭찬할만합니까?’라고. 바라문이여, 그것에 대해 나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 ‘바라문이여, 그대는 이 두 가지 실천 중에 어떤 실천이 옳다고 봅니까? 필요로 하는 것도 더 적고, 하는 일도 더 적지만 더 많은 결실과 더 많은 이익이 있습니까?’라고.” 두 번째도 상가라와 바라문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말하자면 고따마 존자와 아난다 존자처럼, 이것들은 나에게 훌륭하고 칭찬할만합니다.”
세 번째도 아난다 존자는 상가라와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 “바라문이여, 나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 ‘어떤 것들이 그대에게 훌륭합니까? 또는 어떤 것들이 그대에게 칭찬할만합니까?’라고. 바라문이여, 그것에 대해 나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 ‘바라문이여, 그대는 이 두 가지 실천 중에 어떤 실천이 옳다고 봅니까? 필요로 하는 것도 더 적고, 하는 일도 더 적지만 더 많은 결실과 더 많은 이익이 있습니까?’라고.” 세 번째도 상가라와 바라문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말하자면 고따마 존자와 아난다 존자처럼, 이것들은 나에게 훌륭하고 칭찬할만합니다.”
그러자 세존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세 번이나 상가라와 바라문은 아난다로부터 법에 맞는 질문을 계속 받고 있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내가 이 상황을 해결해주어야겠다.”라고. 그래서 세존은 상가라와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 “바라문이여, 왕의 궁전에서 왕의 신하들이 모여앉아 함께 대화하는 중에 어떤 주제가 있었습니까?” “고따마 존자여, 왕의 궁전에서 왕의 신하들이 모여앉아 함께 대화하는 중에 이런 주제가 있었습니다. — ‘이전에는 더 적은 비구들이 있었지만, 더 많은 비구가 인간을 넘어선 법들인 신통(神通)의 비범(非凡)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많은 비구가 있지만, 더 적은 비구들이 인간을 넘어선 법들인 신통(神通)의 비범(非凡)을 보여준다.’라고. 고따마 존자여, 왕의 궁전에서 왕의 신하들이 모여앉아 함께 대화하는 중에 이런 주제가 있었습니다.”
• pāṭihāriya: a miracle; an extraordinary event. (nt.) → 비범(非凡)
• iddhi: prosperity; potency; psychic power. (f.) → 신통(神通)
• ādesanā: prophesy; guessing; pointing out. (f.) → 신탁(神託)
• anusāsanī: advice; instruction. (f.) → 이어지는 가르침 → 가르침의 근본 = 교본(敎本)
• sāsana: teaching; order; message; doctrine; a letter. (nt.)
“바라문이여, 이런 세 가지 비범(非凡)이 있습니다. 무엇이 셋입니까? 신통(神通)의 비범(非凡), 신탁(神託)의 비범(非凡), 교본(敎本)[가르침의 근본]의 비범(非凡).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신통(神通)의 비범(非凡)입니까?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합니다. —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도 하고, 분말과 성벽과 산을 가로지르기를 허공에서처럼 닿지 않고 갑니다. 땅에서도 물에서처럼 떠오르고 들어갑니다. 물에서도 땅에서처럼 빠지지 않고 갑니다. 허공에서도 가부좌하고 날개 달린 새처럼 갑니다. 이렇게 강력하고 웅장한 저 달과 해를 손으로 닿아 쓰다듬습니다.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으로 나아갑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신통(神通)의 비범(非凡)이라고 불립니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신탁(神託)의 비범(非凡)입니까?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합니다. —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한,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하지 않고,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합니다. —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한,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하지 않고,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를 듣고서 말합니다. —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한,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하지 않고,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고,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에 든 자의 심(心)으로부터 심(心)의 차이를 분명히 압니다. — ‘이런 그대의 의행(意行)의 지향들처럼 이 심(心)의 이어짐들은 이러이러한 위딱까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신탁(神託)의 비범(非凡)이라고 불립니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교본(敎本)[가르침의 근본]의 비범(非凡)입니까?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 ‘이렇게 위딱까 하고, 이렇게 위딱까 하지 말라. 이렇게 작의(作意)하고 이렇게 작의(作意)하지 말라. 이것은 버리고 이것은 성취하여 머물러라.’라고. 바라문이여, 이것이 교본(敎本)의 비범(非凡)이라고 불립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세 가지 비범(非凡)입니다. 바라문이여, 이런 세 가지 비범(非凡) 중에 어떤 비범(非凡)이 더 훌륭하고 더 뛰어나서 좋다고 생각합니까?”
“고따마 존자여, 거기 이 비범(非凡)에서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합니다. …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으로 나아갑니다.’ 고따마 존자여, 이 비범(非凡)은 오직 그것을 행하는 자만이 그것을 경험합니다. 오직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만 그것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이 비범(非凡)은 나에게 환상이 함께한 것처럼 보입니다.
고따마 존자여, 이 비범(非凡)에서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합니다. —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한, 고따마 존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인상(印象)에 의해서 말하지 않고,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합니다. … 사람이나 비인간(非人間)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를 듣고서 말합니다. …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를 듣고서 말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에 든 자의 심(心)으로부터 심(心)의 차이를 분명히 압니다. — ‘이런 그대의 의행(意行)의 지향들처럼 이 심(心)의 이어짐들은 이러이러한 위딱까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만약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이 비범(非凡)도 오직 그것을 행하는 자만이 그것을 경험합니다. 오직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만 그것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이 비범(非凡)도 나에게 환상이 함께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고따마 존자여, 이 비범(非凡)에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 ‘이렇게 위딱까 하고, 이렇게 위딱까 하지 말라. 이렇게 작의(作意)하고 이렇게 작의(作意)하지 말라. 이것은 버리고 이것은 성취하여 머물러라.’라고. 고따마 존자여, 오직 이 비범(非凡)이 이런 세 가지 비범(非凡) 중에 이런 비범(非凡)이 더 훌륭하고 더 뛰어나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고따마 존자에 의해서 잘 말해진 이것만큼 우리는 이런 세 가지 비범(非凡)을 구족한 고따마 존자를 받아들입니다. 참으로 고따마 존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합니다. …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으로 나아갑니다. 고따마 존자는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에 든 자의 심(心)으로부터 심(心)의 차이를 분명히 압니다. — ‘이런 그대의 의행(意行)의 지향들처럼 이 심(心)의 이어짐들은 이러이러한 위딱까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고따마 존자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 ‘이렇게 위딱까 하고, 이렇게 위딱까 하지 말라. 이렇게 작의(作意)하고 이렇게 작의(作意)하지 말라. 이것은 버리고 이것은 성취하여 머물러라.’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거의 비난하는 말들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설명하겠습니다. 바라문이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합니다. …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으로 나아갑니다. 나는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에 든 자의 심(心)으로부터 심(心)의 차이를 분명히 압니다. — ‘이런 그대의 의행(意行)의 지향들처럼 이 심(心)의 이어짐들은 이러이러한 위딱까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나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 ‘이렇게 위딱까 하고, 이렇게 위딱까 하지 말라. 이렇게 작의(作意)하고 이렇게 작의(作意)하지 말라. 이것은 버리고 이것은 성취하여 머물러라.’라고.”
“그런데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 외에 이런 세 가지 비범(非凡)을 갖춘 다른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이런 세 가지 비범(非凡)을 구족한 비구들은 단지 일백, 이백, 삼백, 사백, 오백 명이 아니라 거기서 더 넘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지금 그 비구들은 어디에 머뭅니까?” “바라문이여, 바로 이 비구 상가에 있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에 의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해진 법이 있습니다. 저는 의지처인 고따마 존자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 있는 동안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