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sāḷhasuttaṃ (AN 3.67-살하 경)
2. mahāvaggo, 6. sāḷhasuttaṃ (AN 3.67-살하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난다까 존자는 사왓티에서 동쪽 사원의 녹자모 저택에 머물렀다. 그때 미가라의 손자인 살하와 세쿠니야의 손자인 사나가 난다까 존자에게 왔다. 와서는 난다까 존자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미가라의 손자 살하에게 난다까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
“살하들이여, 전승에 의해, 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 해서, 딱까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오지(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살하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불선(不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있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받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살하들이여, 그대들은 버려야 합니다.
“살하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망(望)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그것의 머리를 간탐(慳貪)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살하들이여, 열망(熱望)하고 간탐(慳貪)하는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불익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진(嗔)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그것의 머리를 진에(瞋恚)라고 나는 말합니다. 살하들이여, 불쾌해하고 거슬린 심(心)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불익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치(癡)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그것의 머리를 무명(無明)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살하들이여, 열중하고 무명(無明)이 스민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불익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법들은 선(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다, 대덕이시여.”
“결점이 있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까?”
“결점이 있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받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받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덕이시여,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고 저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살하들이여, ‘전승에 의해, 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 해서, 딱까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오지(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살하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불선(不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있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받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살하들이여, 그대들은 버려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습니다.
살하들이여, ‘전승에 의해, 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 해서, 딱까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오지(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살하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선(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없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과 즐거움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살하들이여, 그대들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합니다.
“살하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무망(無望)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그것의 머리를 간탐(慳貪)하지 않음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살하들이여, 열망(熱望)하지 않고 간탐(慳貪)하지 않는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무진(無嗔)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그것의 머리를 진에(瞋恚)하지 않음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살하들이여, 불쾌해하지 않고 거슬리지 않은 심(心)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무치(無癡)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그것의 머리를 명(明)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살하들이여, 열중하지 않고 명(明)이 스민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부추깁니다. 이런 그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살하들이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법들은 선(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까?”
“선(善)입니다, 대덕이시여.”
“결점이 있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받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과 즐거움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덕이시여,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과 즐거움으로 이끕니다. 저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살하들이여, ‘전승에 의해, 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 해서, 딱까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오지(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살하들이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선(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없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과 즐거움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살하들이여, 그대들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습니다.
살하들이여, 빈틈없이 알아차리고[밀착된 념(念)],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정지(正知)] 이렇게 간탐하지 않고, 진에하지 않고, 열중하지 않는 그 성스러운 제자는 자(慈)가 함께한 심(心)으로 … 비(悲)가 함께한 심(心)으로 … 희(喜)가 함께한 심(心)으로 … 사(捨)가 함께한 심(心)으로 한 방향을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그렇게 두 방향을, 그렇게 세 방향을, 그렇게 네 방향을. 이렇게 위로 아래로 중간방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에게 펼쳐서 모든 세상을 크고 귀하고 무량한, 원망 없고 거슬림 없는 사(捨)가 함께한 심(心)으로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압니다. — ‘이것이 있다. 낮은 것이 있다. 뛰어난 것이 있다. 이 상(想)에 속한 것을 넘어선 해방(解放)이 있다.’라고.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에게 소유의 번뇌[욕루(慾漏)]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유루(有漏)]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하고, 무명의 번뇌[무명루(無明漏)]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합니다. 해탈할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습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압니다. — ‘이전에는 망(望)이 있었다. 그것은 불선(不善)이었다. 그것은 지금은 없다. 그래서 이것은 선(善)이다. 이전에는 진(嗔)이 있었다. … 이전에는 치(癡)가 있었다. 그것은 불선(不善)이었다. 그것은 지금은 없다. 그래서 이것은 선(善)이다.’라고. 그는 지금여기에서 원함이 없고, 꺼지고, 행복을 경험하고,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뭅니다.”
67번 두 번째 문단 '깔라마들이여' 등 그 아래로 총 4곳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