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강의(230422) ― 26. 바라문 품, 게송(419-423)[법구경 완결](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법구경 강의(230422) ― 26. 바라문 품, 게송(419-423)[법구경 완결](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UzMyrAnPLv0
(게송 419)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완전히 아는 사람
붙잡음이 없는 선서(善逝)이자 부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 죽고 태어남 즉 윤회하는 중생의 삶을 완전히 알고서 벗어나 열반으로 잘 가신 분, 그래서 진리의 길을 보여주신 선서(善逝), 애멸(愛滅)을 통해 붙잡음이 없는 부처.
(게송 420)
신과 간답바와 사람들이 간 곳을 모르는 사람
번뇌 다한 아라한,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 번뇌 다함 → 무명(無明)과 애(愛)의 해소 → 몸으로 가지 않음
; 몸으로 가는 범주에 속한 신도 간답바도 사람들도 몸으로 가지 않은 그곳을 모름
(게송 421)
이전에도 나중에도 중간에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
아무것도 없고 집착에서 떠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 상(想)의 향상을 통한 성취의 한계[상(想)의 증득으로 얻어져야 하는 것] = 무소유처(無所有處), 남아 있는 행(行)들의 증득에 의한 성취 =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소멸의 증득에 의한 성취 = 상수멸(想受滅)(*) →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물면서 지혜로써 보아 번뇌 다한 아라한 = 아무것도 없음 → 집착에서 떠남
(*) (SN 14.11-일곱 요소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3&wr_id=2
422.
usabhaṃ pavaraṃ vīraṃ, mahesiṃ vijitāvinaṃ.
anejaṃ nhātakaṃ buddhaṃ,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황소이며, 가장 뛰어난 영웅, 위대한 정복자
갈망하지 않아서 씻겨진(갈망하지 않음으로 목욕한) 부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 (MN 39-앗사뿌라 큰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4_09&wr_id=4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hātako hoti? nhātāssa honti pāpakā akusalā dhamm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hātako hoti.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목욕한 자인가?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보(報)가 괴로움인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씻겨졌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목욕한 자이다.
423.
전생을 알고 천상과 지옥을 보는 사람
그래서 태어남의 부서짐을 성취한 사람, 실다운 지혜로 완성한 성자
모든 것을 완성하여 그친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 전생을 앎 = 숙주명(宿住明), 천상과 지옥을 봄 = 천안명(天眼明), 태어남의 부서짐의 성취 = 누진명(漏盡明), 실다운 지혜(abhiññā) = 전도되지 않은 시각 = 여실지견(如實知見) → 모든 것의 완성 = 완전한 지혜(pariññā) = 해탈지견(解脫知見)
; 여실지견 = 삼매의 제약 위의 깨달음, 해탈지견 = 삼매의 제약이 해소된 일상의 깨달음 → 지시하는 위치는 달라도 실다운 지혜(abhiññā)와 완전한 지혜(pariññā)는 전도되지 않는 관점으로서는 하나임
; 실다운 지혜로 완성한 성자(abhiññāvosito muni) → 심층적인 사성제(四聖諦)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1&wr_id=215
; 사선(四禪)-삼명(三明)으로의 깨달음 ― 누진통(漏盡通)이 구차제주(九次第住)에 의한 상수멸에서의 누진(漏盡)이기 때문에 무색계를 포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