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gaddūpamasuttaṃ (MN 22-뱀의 비유 경) 전체 번역 - 전반부(234-244)
3. opammavaggo, 2. alagaddūpamasuttaṃ (MN 22-뱀의 비유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악하고 치우친 견해가 생겼다. 많은 비구가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악하고 치우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아릿타 비구에게 갔다. 가서는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도반 아릿타여, 그대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악하고 치우친 견해가 생긴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말했다. “참으로,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압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그 악하고 치우친 견해를 여의게 하려는 바람 때문에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했다. ―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도반 아릿타여,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세존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다양한 설법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은 장애가 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됩니다. 소유의 삶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뼈다귀의 비유로써 … 고기 조각의 비유로써 … 건초 횃불의 비유로써 … 숯불 구덩이의 비유로써 … 꿈의 비유로써 … 빌린 물건의 비유로써 … 나무 열매의 비유로써 … 도살장의 비유로써 … 칼과 창의 비유로써 … 뱀 머리의 비유로써 소유의 삶은 괴로움과 절망이 많고,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그러나 이렇게 그 비구들이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였지만,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강한 집착 때문에 “참으로,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압니다.”라고 그 악하고 치우친 견해를 고집하여 말했다.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그 악하고 치우친 견해를 여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아랏타 비구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악한 치우친 견해가 생겼습니다. 대덕이시여, 저희는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악한 치우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덕이시여, 저희는 아릿타 비구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도반 아릿타여, 그대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악한 치우친 견해가 생긴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대덕이시여,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가 저희에게 ‘참으로,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대덕이시여, 저희는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그 악하고 치우친 견해를 여의게 하려는 바람 때문에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했습니다. ―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도반 아릿타여,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세존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다양한 설법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은 장애가 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됩니다. 소유의 삶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뼈다귀의 비유로써 … 고기 조각의 비유로써 … 건초 횃불의 비유로써 … 숯불 구덩이의 비유로써 … 꿈의 비유로써 … 빌린 물건의 비유로써 … 나무 열매의 비유로써 … 도살장의 비유로써 … 칼과 창의 비유로써 … 뱀 머리의 비유로써 소유의 삶은 괴로움과 절망이 많고,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그러나 대덕이시여, 저희가 이렇게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였지만,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강한 집착 때문에 ‘참으로,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압니다.’라고 그 악하고 치우친 견해를 고집하여 말했습니다. 대덕이시여,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그 악하고 치우친 견해를 여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희는 세존께 그 의미를 말씀드립니다.”라고.
그러자 세존은 어떤 비구에게 말했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나의 말로써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불러라. ― ‘도반 아릿타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릅니다.’라고.”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에게 대답한 뒤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갔다. 가서는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도반 아릿타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릅니다.”라고.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그 비구에게 대답한 뒤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아릿타여, 그대에게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안다.’라는 악한 치우친 견해가 생긴 것이 사실인가?”라고.
“참으로,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장애가 된다고 설하신 이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압니다.” “어리석은 자여, 참으로 그대는 누구에게서 내가 설한 이런 가르침을 알았는가? 어리석은 자여, 다양한 설법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은 장애가 된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된다. 소유의 삶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나는 말했다. 뼈다귀의 비유로써 … 고기 조각의 비유로써 … 건초 횃불의 비유로써 … 숯불 구덩이의 비유로써 … 꿈의 비유로써 … 빌린 물건의 비유로써 … 나무 열매의 비유로써 … 도살장의 비유로써 … 칼과 창의 비유로써 … 뱀 머리의 비유로써 소유의 삶은 괴로움과 절망이 많고,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자신의 잘못된 이해로 우리를 비방하고 자신을 파괴하고 많은 악덕(惡德)을 쌓는다. 어리석은 자여, 그것 때문에 그대에게 오랜 세월 불이익과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존은 비구들에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가 이 법(法)과 율(律)에서 열기를 만들겠는가?” “어찌 그렇겠습니까, 대덕이시여?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침묵하고,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당황스럽게 앉아있었다. 그러자 세존은 침묵하고,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당황스럽게 앉아있는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보면서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어리석은 자여, 그것에 대한 그대 자신의 이 나쁜 견해에 의해 그대는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비구들에게 물을 것이다.”라고.
그리고 세존은 비구들에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자신의 잘못된 이해로 우리를 비방하고 자신을 파괴하고 많은 악덕을 쌓는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처럼 그대들도 이렇게 내가 설한 법을 알고 있는가?”라고.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다양한 설법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은 장애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됩니다. 소유의 삶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에 위험이 더 많습니다. 뼈다귀의 비유로써 … 뱀 머리의 비유로써 소유의 삶은 괴로움과 절망이 많고,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이렇게 내가 설한 법을 알고 있으니,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다양한 설법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은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된다. 소유의 삶은 매력이 적고 괴로움과 절망이 많으며,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나는 말했다. 뼈다귀의 비유로써 … 뱀 머리의 비유로써 소유의 삶은 괴로움과 절망이 많고, 여기서 위험은 반복된다고 나는 말했다.’라고. 그러나 이 예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자신의 잘못된 이해로 우리를 비방하고 자신을 파괴하고 많은 악덕(惡德)을 쌓는다. 어리석은 자여, 그것 때문에 그대에게 오랜 세월 불이익과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가 소유의 대상들과 다른 곳에서, 소유의 상(想)과 다른 곳에서, 소유의 생각과 다른 곳에서 소유의 삶을 수용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경(經), 응송(應頌), 수기(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익힌다. 그들은 그 법을 익힌 뒤에 그 법들에 대해 의미를 지혜로써 조사하지 않는다. 지혜로써 의미를 조사하지 않을 때, 그 법들은 그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비난의 이익과 논쟁에서 풀려남의 이익 때문에 법을 익힌다. 그들은 어떤 목적을 위한 법을 익히지만, 그 법의 목적을 성취해 누리지 못한다. 그들에게 잘못 붙잡은 그 법들은 오랫동안 불이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법들을 잘못 붙잡음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뱀을 바라고, 뱀을 좇고, 뱀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가 커다란 뱀을 볼 것이다. 그런 그가 뱀의 똬리나 꼬리를 잡을 것이다. 그에게 그 뱀은 되돌아 손이나 팔이나 다른 곳의 어떤 부분을 물 것이다. 그는 그것 때문에 죽거나 죽을 만큼의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못 잡았음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경(經), 응송(應頌), 수기(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익힌다. 그들은 그 법을 익힌 뒤에 그 법들에 대해 의미를 지혜로써 조사하지 않는다. 지혜로써 의미를 조사하지 않을 때, 그 법들은 그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비난의 이익과 논쟁에서 풀려남의 이익 때문에 법을 익힌다. 그들은 어떤 목적을 위한 법을 익히지만, 그 법의 목적을 성취해 누리지 못한다. 그들에게 잘못 붙잡은 그 법들은 오랫동안 불이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법들을 잘못 붙잡음이다.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경(經), 응송(應頌), 수기(授記-확정적인 설명),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익힌다. 그들은 그 법을 익힌 뒤에 그 법들에 대해 의미를 지혜로써 조사한다. 지혜로써 의미를 조사할 때 그 법들은 그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들은 비난의 이익과 논쟁에서 풀려남의 이익 때문에 법을 익히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목적을 위한 법을 익히고, 그 법의 목적을 성취해 누린다. 그들에게 잘 붙잡은 그 법들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법들을 잘 붙잡음이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뱀을 바라고, 뱀을 좇고, 뱀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가 커다란 뱀을 볼 것이다. 그런 그가 염소의 발굽 모양의 막대기로 잘 누를 것이다. 염소의 발굽 모양의 막대기로 잘 누른 뒤에 목을 잘 잡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그 뱀이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다른 곳의 어떤 부분을 물 수 있겠는가! 그는 그것 때문에 죽거나 죽을 만큼의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 잡았음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경(經), 응송(應頌), 수기(授記-확정적인 설명),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익힌다. 그들은 그 법을 익힌 뒤에 그 법들에 대해 의미를 지혜로써 조사한다. 지혜로써 의미를 조사할 때 그 법들은 그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들은 비난의 이익과 논쟁에서 풀려남의 이익 때문에 법을 익히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목적을 위한 법을 익히고, 그 법의 목적을 성취해 누린다. 그들에게 잘 붙잡은 그 법들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법들을 잘 붙잡음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어떤 것을 위해 내가 말한 것의 의미를 알아야 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을 위해 내가 말한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그대들은 거기서 나 또는 잘 배운 비구들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건넘을 위하여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한 법을 설하겠다. 붙잡음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설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그가 이쪽 강변은 위험하고 두렵고, 저쪽 강변은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는 큰 강을 볼 것이다. 저쪽 강변으로 가는 배도 없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기 위한 다리도 없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이 큰 강은 이쪽 강변은 위험하고 두렵고, 저쪽 강변은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리고 저쪽 강변으로 가는 배도 없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기 위한 다리도 없다. 내가 풀과 나무토막과 가지와 잎들을 모으고 뗏목을 엮은 뒤에 그 뗏목에 의지해서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한 저쪽 강변으로 건너가면 어떨까?’라고. 그래서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풀과 나무토막과 가지와 잎들을 모으고 뗏목을 엮은 뒤에 그 뗏목에 의지해서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한 저쪽 강변으로 건너갈 것이다. 건너서 저쪽 강변에 닿은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이 뗏목은 많은 역할을 했다. 나는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한 저쪽 강변으로 건넜다. 내가 이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얹고서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면 어떨까?’라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는 그 사람은 그 뗏목에 대해 할 바를 하는 것인가?”라고.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 할 바를 하는 것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건너서 저쪽 강변에 닿은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이 뗏목은 많은 역할을 했다. 나는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한 저쪽 강변으로 건넜다. 나는 이 뗏목을 땅 위에 올려놓거나 물에 담궈 두고서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면 어떨까?’라고.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는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 할 바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나는 건넘을 위하여 뗏목에 비유한 법을 설했다. 붙잡음을 위해서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을 위해 뗏목에 비유한 법을 설했다. 아는 그대들은 법(法)도 버려야 하니, 하물며 비법(非法)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견해의 토대가 있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대해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서 훈련되지 못하고, 고결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고결한 사람의 법에 대해 능숙하지 못하고, 고결한 사람의 법에서 훈련되지 못한 배우지 못한 범부는 색(色)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한다. 수(受)를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한다. 상(想)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한다. 행(行)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한다.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한다.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아(我)다. 그런 나는 죽은 뒤에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라는 견해의 토대에 대해서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사람을 만나고, 성스러운 법에 대해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서 훈련되고, 고결한 사람을 만나고, 고결한 사람의 법에 대해 능숙하고, 고결한 사람의 법에서 훈련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색(色)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수(受)를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상(想)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행(行)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아(我)다. 그런 나는 죽은 뒤에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라는 견해의 토대에 대해서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하는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가 있습니까?” “있다, 비구여.”라고 세존은 말했다. “여기, 비구여,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 ‘참으로 나의 것이 있었다. 참으로 그것이 나에게 없다. 참으로 나의 것이 있기를! 참으로 나는 그것을 얻지 못한다!’라고. 그는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한다. 비구여, 이렇게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가 있다.”라고.
“대덕이시여,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 않음이 있습니까?” “있다, 비구여.”라고 세존은 말했다. “여기, 비구여,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참으로 나의 것이 있었다. 참으로 그것이 나에게 없다. 참으로 나의 것이 있기를! 참으로 나는 그것을 얻지 못한다!’라고. 그는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렇게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 않음이 있다.”라고.
“대덕이시여,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가 있습니까?” “있다, 비구여.”라고 세존은 말했다. “여기, 비구여, 어떤 사람은 이런 견해를 가졌다. ―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아(我)다. 그런 나는 죽은 뒤에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라고. 그는 모든 견해의 토대-결정-선입감-성향-잠재성향들을 뿌리 뽑기 위해, 모든 행(行)을 그치기 위해,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기 위해, 애(愛)의 부서짐을 위해, 이탐을 위해, 소멸을 위해, 열반을 위해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설한 법을 듣는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참으로 나는 단멸할 것이다. 참으로 나는 파괴될 것이다. 참으로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그는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한다. 비구여, 이렇게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가 있다.”라고.
“대덕이시여,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 않음이 있습니까?” “있다, 비구여.”라고 세존은 말했다. “여기, 비구여, 어떤 사람은 이런 견해를 가지지 않았다. ―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아(我)다. 그런 나는 죽은 뒤에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라고. 그는 모든 견해의 토대-결정-선입감-성향-잠재성향들을 뿌리 뽑기 위해, 모든 행(行)을 그치기 위해,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기 위해, 애(愛)의 부서짐을 위해, 이탐을 위해, 소멸을 위해, 열반을 위해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설한 법을 듣는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 ‘참으로 나는 단멸할 것이다. 참으로 나는 파괴될 것이다. 참으로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그는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렇게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요 않음이 있다.”라고.
비구들이여,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고,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라면 그대들은 소유물을 붙잡아도 좋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고,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는 소유물을 보았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나도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고,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는 소유물을 보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집착하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대들은 아어취(我語取)[아(我)에 대한 주장에 대한 집착]에 집착해도 좋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집착하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아어취(我語取)를 보았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나도 집착하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아어취(我語取)를 보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기대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대들은 견해에 기대도 좋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기대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견해에 기대는 것을 보았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나도 기대는 자에게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을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견해에 기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아(我)가 있을 때 나의 아(我)에 속한 것이 있다.’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또는 아(我)에 속한 것이 있을 때 나의 아(我)가 있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아(我)도 아(我)에 속한 것도 사실로부터 믿을 만함으로부터 발견되지 않을 때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아(我)다. 그런 나는 죽은 뒤에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라는 견해의 토대는, 비구들이여, 전적으로 완전히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대덕이시여, 어떻게 아니겠습니까? 대덕이시여, 참으로 전적으로 완전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색(色)은 상(常)한가, 무상(無常)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苦)인가, 락(樂)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렇다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수(受) … 상(想) … 행(行)들 … 식(識)은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인가, 락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렇다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과거-미래-현재의 어떤 색에 대해서도,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모든 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 어떤 수에 대해서도,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모든 수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어떤 수에 대해서도 … 어떤 상에 대해서도 … 어떤 행들에 대해서도 …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저열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과거-미래-현재의 어떤 식에 대해서도,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모든 식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