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바른 삼매] mahācattārīsakasuttaṃ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
2. anupadavaggo, 7. mahācattārīsakasuttaṃ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거기서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기반을 가지고 필수품을 갖춘 성스러운 바른 삼매를 설하겠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설할 것이다.”라고.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그러면 무엇이 기반을 가지고 필수품을 갖춘 성스러운 바른 삼매[정정(正定)]인가? 정견(正見-바른 견해), 정사유(正思惟-바른 사유), 정어(正語-바른말), 정업(正業-바른 행위), 정명(正命-바른 생활), 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 정념(正念-바른 사띠)의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심일경성(心一境性) — 비구들이여, 이것이 기반을 가졌다고도 필수품을 갖추었다고도 하는 성스러운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인가? 삿된 견해를 삿된 견해라고 꿰뚫어 알고, 바른 견해를 바른 견해라고 꿰뚫어 안다. —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삿된 견해인가? ‘①보시도 없고 제사도 없고 봉헌도 없다. ②선행과 악행의 업들에게 과도 없고 보도 없다. ③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④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⑤화생 하는 중생은 없다. ⑥세상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하는, 바른길에 들어서서 바르게 실천하는 사문·바라문들이 없다.’라는 — 이것이, 비구들이여, 삿된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 비구들이여, 두 가지 바른 견해를 나는 말한다. —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견해가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견해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견해인가? '①보시도 있고 제사도 있고 봉헌도 있다. ②선행과 악행의 업들에게 과도 있고 보도 있다. ③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④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⑤화생 하는 중생은 있다. ⑥세상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하는, 바른길에 들어서서 바르게 실천하는 사문·바라문들이 있다.'라는 — 이것이,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견해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심(心)을 가진 자, 번뇌 없는 심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갖춘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지혜, 지혜의 기능, 지혜의 힘, 택법각지(擇法覺支), 바른 견해, 길의 요소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견해라고 불린다. 그는 삿된 견해를 버리고 바른 견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그는 사띠 하면서 삿된 견해를 버리고, 사띠 하면서 바른 견해를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바른 사띠이다. 이렇게 이러한 세 가지 법이 바른 견해를 따라 흐르고 따라 구르니 곧 바른 견해-바른 노력-바른 사띠이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삿된 사유를 삿된 사유라고 꿰뚫어 알고, 바른 사유를 바른 사유라고 꿰뚫어 안다.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삿된 사유인가? 소유의 사유, 분노의 사유, 폭력의 사유 — 비구들이여, 이것이 삿된 사유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유인가? 비구들이여, 두 가지 바른 사유를 나는 말한다. —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사유가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사유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사유인가? 출리(出離)의 사유, 분노하지 않는 사유, 비폭력의 사유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사유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사유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심을 가진 자, 번뇌 없는 심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갖춘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딱까, 위딱까, 사유, 마음의 고정, 마음의 전념, 마음의 적용, 말의 형성작용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사유라고 불린다. 그는 삿된 사유를 버리고 바른 사유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그는 사띠 하면서 삿된 사유를 버리고, 사띠 하면서 바른 사유를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바른 사띠이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이 바른 사유를 따라 흐르고 따라 구르니 곧 바른 견해-바른 노력-바른 사띠이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삿된 말을 삿된 말이라고 꿰뚫어 알고, 바른말을 바른말이라고 꿰뚫어 안다.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삿된 말인가? 망어(妄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기어(綺語) — 비구들이여, 이것이 삿된 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말인가? 비구들이여, 두 가지 바른말을 나는 말한다. —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말이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말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말인가? 망어를 삼감, 양설을 삼감, 악구를 삼감, 기어를 삼감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말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심을 가진 자, 번뇌 없는 심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갖춘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말로 짓는 네 가지 잘못된 행위로부터의 떠남, 제어, 자제, 삼감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말이라고 불린다. 그는 삿된 말을 버리고 바른말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그는 사띠 하면서 삿된 말을 버리고, 사띠 하면서 바른말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바른 사띠이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이 바른말을 따라 흐르고 따라 구르니 곧 바른 견해-바른 노력-바른 사띠이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삿된 행위를 삿된 행위라고 꿰뚫어 알고, 바른 행위를 바른 행위라고 꿰뚫어 안다.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삿된 행위인가?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 비구들이여, 이것이 삿된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위인가? 비구들이여, 두 가지 바른 행위를 나는 말한다. —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행위가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행위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행위인가? 살생(殺生)을 삼감, 투도(偸盜)를 삼감, 사음(邪淫)을 삼감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행위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심을 가진 자, 번뇌 없는 심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갖춘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잘못된 행위로부터의 떠남, 제어, 자제, 삼감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행위라고 불린다. 그는 삿된 행위를 버리고 바른 행위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그는 사띠 하면서 삿된 행위를 버리고, 사띠 하면서 바른 행위를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바른 사띠이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이 바른 행위를 따라 흐르고 따라 구르니 곧 바른 견해-바른 노력-바른 사띠이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삿된 생활을 삿된 생활이라고 꿰뚫어 알고, 바른 생활을 바른 생활이라고 꿰뚫어 안다. 이것이 바른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삿된 생활인가? 사기, 아첨, 예언, 요술, 이득 때문에 이득을 추구함 — 비구들이여, 이것이 삿된 생활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활인가? 비구들이여, 두 가지 바른 생활을 나는 말한다. —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생활이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생활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생활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들은 삿된 생활을 버리고 바른 생활로 생계를 유지한다.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생활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생활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심을 가진 자, 번뇌 없는 심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갖춘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삿된 생활로부터의 떠남, 제어, 자제, 삼감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생활이라고 불린다. 그는 삿된 생활을 버리고 바른 생활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그는 사띠 하면서 삿된 생활을 버리고, 사띠 하면서 바른 생활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바른 사띠이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이 바른 생활을 따라 흐르고 따라 구르니 곧 바른 견해-바른 노력-바른 사띠이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가진 자에게 바른 사유가 가능하다. 바른 사유를 가진 자에게 바른말이 가능하다. 바른말을 가진 자에게 바른 행위가 가능하다. 바른 행위를 가진 자에게 바른 생활이 가능하다. 바른 생활을 가진 자에게 바른 노력이 가능하다. 바른 노력을 가진 자에게 바른 사띠가 가능하다. 바른 사띠를 가진 자에게 바른 삼매가 가능하다. 바른 삼매를 가진 자에게 바른 앎이 가능하다. 바른 앎을 가진 자에게 바른 해탈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요소를 갖춘 유학(有學)과 열 요소를 갖춘 아라한이 있다.(거기서도 바른 앎으로부터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을 제거하고 수행의 완성으로 나아간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바른 견해가 앞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바른 견해가 앞서는가? 바른 견해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견해가 부서진다. 그러면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나는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도 부서진다. 그리고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다양한 선법들이 늘어나 충만해진다. 바른 사유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사유가 부서진다 … 바른말을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말이 부서진다 … 바른 행위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행위가 부서진다 … 바른 생활을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생활이 부서진다 … 바른 노력을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노력이 부서진다 … 바른 사띠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사띠가 부서진다 … 바른 삼매를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삼매가 부서진다 … 바른 앎을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앎이 부서진다 … 바른 해탈을 가진 자에게, 비구들이여, 삿된 해탈이 부서진다. 그러면 삿된 해탈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도 부서진다. 그리고 바른 해탈을 조건으로 다양한 선법들이 늘어나 충만해진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스무 가지 선(善)의 측면과 스무 가지 불선(不善)의 측면이 있다. 이 커다란 마흔의 법문이 굴려졌는데, 사문, 바라문, 신, 마라, 범천 등 세상에서 누구에 의해서도 멈춰질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 커다란 마흔 가지 법문에 대해 비난받아야 하고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지금여기에서 법다움을 갖춘 열 가지 이어지는 말들로 멸시받는다. — 만약 그대가 바른 견해를 비난하면, 그대는 삿된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을 예배하고 칭찬하는 것이 된다. 만약 그대가 바른 사유를 비난하면, 그대는 삿된 사유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을 예배하고 칭찬하는 것이 된다. 만약 그대가 바른말을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행위를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생활을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노력을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사띠를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삼매를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앎을 비난하면 … 만약 그대가 바른 해탈을 비난하면, 그대는 삿된 해탈을 가진 사문-바라문들을 예배하고 칭찬하는 것이 된다. 비구들이여,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 커다란 마흔 가지 법문에 대해 비난받아야 하고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지금여기에서 법다움을 갖춘 열 가지 이어지는 말들로 멸시받는다. 비구들이여, 무인(無因)의 이론, 결실 없음의 이론, 허무주의의 이론을 가지고 있던 옥깔라의 왓사반냐들도 이 커다란 마흔 가지 법문에 대해 비난받아야 하고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난과 분노과 책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